<유럽을 달군 K팝과 ‘브리티시 인베이전’>

입력 2011-06-15 18:18
1964년 2월 더먹머리 영국 청년 네 명이 미국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이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면서 세계 대중 음악의 역사가 바뀌었지요. 존 레논, 폴 메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리버풀에서 날아온 비틀스 멤버들이었습니다. 팬들은 처음 겪는 ‘팝 히스테리’에 경악했는데요. 히트곡 ‘I Want to Hold Your Hand’ 같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멜로디와 선정적(?) 가사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었지요. 록의 르네상스는 이런 이분법의 구도 속에서 서서히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뛰어난 로큰롤 가수는 있었지만 1950년대 말께 일제히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불세출의 슈퍼 스타였으나 군 입대로 전성기를 마감한 엘비스 프레슬리, 비치 보이스가 불러 유명해진 ‘Surfin' U.S.A’를 만들었지만 매춘 연루설로 고개를 숙인 척 베리, 비행기 추락으로 숨진 버디 홀리, 갑자기 목사로 변신한 리틀 리처드…. 이후의 대중 음악 헤게모니는 로큰롤 이전에 등장했던 스탠다드 팝으로 다시 넘어갔지만요. 수명이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비틀스의 등장 때문이죠.

비틀스 이후에도 영국 밴드들의 미국 공략은 가속화됩니다. 롤링 스톤스, ‘더 후’가 대표적인데요. 롤링 스톤스는 그때까지 빛을 보지 못했던 블루스를 접목시킨 연주로써 미국 록 음악의 중흥을 이루게 되지요. 리더인 믹 재거는 지금 고희를 앞두고 있는 나이지만 여전히 무대에서 ‘방방 뛰는’ 다혈질을 숨기지 못하고 있고요. ‘더 후’의 피트 타운센드는 기타를 때려 부수는 등 극단적 매너로 유명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 퀸, 조지 마이클, 컬처 클럽 등 영국 뮤지션들의 활약은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됩니다. 미국인들은 그 충격을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영국인의 침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지난 10,11일 한국의 한류 스타들도 충격적(?) 해외 공연을 했는데요. 이틀 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월드 투어’에 1만4000여 명의 유럽 관객들이 몰렸다고 화제입니다. 객석 대부분이 아시아계였던 과거의 해외 공연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지요. 비가 내리는 속에서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샤이니, 소녀시대 등의 노래를 한국어로 따라 부르고 환호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그 옛날 비틀스 공연때의 소녀 팬들을 떠올렸다는 영국 음반 제작자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일부 한국 매체는 ‘K팝 인베이전’이라고 과감하게(?) 제목을 달아 놓았네요.

K팝의 인기가 이토록 급속도로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론은 우선 초일류로 달리고 있는 한국의 인터넷 기술과 SNS 덕택에 홍보가 쉽다는 겁니다. 더불어 빠른 템포로 쉴 새 없이 춤을 추면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보여주는 신선함이 유럽 10대의 눈길을 끌었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기획형 아이돌 그룹인 한류 스타들의 춤, 노래, 외모의 ‘3박자 매력’이 되레 한정된 이미지로 고착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은 곱씹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매니저와 전속 레코드사가 있긴 했으나) 산업 자본의 견제에서 벗어난 최초의 싱어 송 라이터로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를 펼쳤던 비틀스 주도의 브리티시 인베이전과는 태생적 켜와 결이 다르니까요.

<글, 김홍조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