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달러화 가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른바 재스민 혁명의 지정학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약세 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달러의 대체통화로 거론돼온 유로화와 위안화에 대해 약세현상이 뚜렷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달러화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두 가지 요인으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미국경기는 회복세를 보이지만 재정적자, 국가채무와 같은 당사국의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달러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후유증에 따른 낙인효과라 볼 수 있다.
둘째,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에서 탈달러화 조짐이 가세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을 계기로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었던 △중심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 △중심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글로벌 불균형 조정매커니즘 부재 △과다 외환보유에 따른 부담 등이 노출되면서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있다.
이론적으로 특정국가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경쟁국에게 전가된다. 특히 달러화 같은 중심통화가 평가절하되면 그 충격은 커진다.
작년 11월 서울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담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글로벌 환율전쟁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글로벌 불균형과 환율전쟁을 줄이기 위해 논의해 온 안정책들이 재거론되고 있으나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태다.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경상수지 예시 가이드라인''도 적자만 규제하던 종전과 달리 흑자도 규제하고 있으나 자본주의체제의 본질상 흑자국들의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는 방안이다.
앞으로 새로운 중심통화 논의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새로운 중심통화 논의는 ''투 트랙''으로 진행돼 왔다.
하나는 글로벌 차원에서 논의된 방안으로, 중국이 제안해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IMF의 준비통화인 특별인출권(SDR)과 라틴어로 지구라는 의미의 테라(Terra), 글로벌 유로화 방안 등이 이에 속한다.
또 다른 하나는 지역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동통화 도입 논의다. 현재 지역공동체가 결성돼 있는 곳은 대부분 공동통화 도입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진전이 빠른 곳은 실행에 옮기는 단계다. 아시아, 중동, 남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에서 유로화 구상이 그것이다. 아시아만 하더라도 1980년대 이후 엔화 블록권 → 엔민폐 → 아시아 유로순으로 꾸준이 논의돼 왔다.
특정통화가 지역공동통화 혹은 새로운 중심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화폐의 본래적 기능과 지역 혹은 범세계 중심통화로서의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화폐가 가져야 할 거래 단위, 가치저장 기능, 회계단위 등의 본래적 기능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 혹은 세계 중심통하는 특정국 국민 이외에도 같은 지역 블록 혹은 전세계 국민들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역 혹은 다자 기능도 함께 충족해야 한다.
이런 요건을 갖춰 특정통화가 지역공동통화나 새로운 중심통화로 도입돼 정착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유로화의 경우, 도입되기까지 길게는 20세기 초 자유사상가에 의해 첫 통합을 구상한 시점부터 따진다면 100년 이상이 소요됐다. 유로화도 공식적인 지역공동통화로 도입된 지 10년이 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그렇다면 달러화 약세를 계기로 노출되고 있는 현 국제통화질서의 균열조짐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당수준의 달러 약세 폭과 새로운 중심통화를 동시에 인정하는 1980년대 중반의 ''플라자 체제''와 같은 새로운 국제통화체제가 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앞으로 새로운 국제통화제체가 다시 온다 하더라도 명시적인 합의 형태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1980년대 중반과 달리 각국 간 경기회복세 차이로 유럽, 일본 등은 더 이상의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기는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상수지적자 내용도 중국이 약 50%를 차지할 만큼 많이 변했다.
2010년대 들어 새로운 국제통화체제가 다시 올 경우 명시적이기 보다는 묵시적으로,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는 중심통화도 중국의 위안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수정된 형태’가 될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바마 정부가 기존의 기득권을 양보하고 출범 이후 줄곧 위안화 절상을 주장해 왔던 것도 이 같은 현실을 인식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파악된다.
2차 대전 이후 ''브레튼 우즈 → 스미스 소니언 → 킹스턴 제체''로 대변되는 달러중심체제의 균열은 불가피해 보인다. 세계경제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 어느 국가보다 대외환경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아시아 공동통화 도입논의상 주도권 확보, 외환보유 구성과 결제상의 통화다변화, 외환보유액 확충 등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비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글.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