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오는 헤지펀드.. 위기일까, 기회일까?

입력 2011-02-21 10:00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헤지펀드들이 빠르게 부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지펀드 리서치와 전문자문업체인 헤네시 그룹 등에 따르면 헤지펀드의 투자원금 규모가 1조 8천억 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금융위기 직전에 1조 2천억 달러였던 점을 감안, 투자원금 규모로만 따지면 위기 직전보다 무려 50% 정도가 늘어난 수치다.



특히 지난 3년 간 헤지펀드 활동을 대폭 규제됐던 것과 비교, 최근 들어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재개되고 있음은 이미 위기가 상당 수준 극복되고 있음을 뒷받침해 주는 현상이다. 기준에 따라 엇갈리고 있긴 하나 위기극복 3단계 이론으로 볼 때 지금은 7부 혹은 8부 능선이 지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강력한 규제 속에서 위기 전보다 투자원금이 급증한다는 것은 유동성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이후 미국 등 선진국들의 양적완화와 중국 등 신흥국들의 환율방어 차원에서 불태환정책이 수반되지 않는 시장개입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사상최고수준에 육박한다. 퇴장했던 통화가 서서히 시중에 방출되는 것도 유동성이 커지는 요인이다.

하지만 헤지펀드의 또 다른 상징인 레버리지비율(증거금대비 총투자 가능금액)은 투자원금 규모만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각종 헤지펀드들의 레버리지비율은 평균 5배 내외로 파악된다. 위기 직전 한때 15배에 달했던 때에 비하면 ⅓ 수준에 불과하다. 위험자산을 가장 먼저 투자하는 ‘스마트성과 투기성’이 크게 완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여러 요인 가운데 미국의 단일금융개혁법의 추진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법안의 핵심인 ‘불커 룰’에 따라 복잡한 파생상품과 레버리지 비율을 강력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이제 헤지펀드가 다른 사모펀드와 차이가 없고 벌써부터 금융산업 발전과 투자자의 다양한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헤지펀드들의 활동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투자대상별 헤지펀드를 구분할 때 최근 들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투자성과를 내는 것은 글로벌 매크로 펀드와 상대가치형 펀드다. 글로벌 매크로 펀드는 통화와 채권을 주로 투자하고, 상대가치형 펀드는 저평가된 투자처를 발굴해 수익을 낸다.



이는 다른 투자주체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글로벌 매크로 펀드가 통화와 채권에 투자하는 것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심화되고 있는 경기와 정책, 금리, 통화가치상의 양극화를 겨냥한 투자전략이다. 상대가치형 펀드가 신흥국과 프런티어 마켓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것은 세계경제 중심축이 빠르게 이들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지펀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주식헤지용 펀드의 활동은 여전히 위축돼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글로벌 증시가 빠르게 회복된 투자여건을 감안하면 주식헤지용 헤지펀드들이 회생하지 못하는 있다는 점은 의외다.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복잡한 파생상품 기법 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것이 가장 큰 저해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것은 헤지펀드들의 활동처가 바뀌고 있는 점이다. 위기 이전에 헤지펀드들은 주로 조세회피처에서 활동했다. 당시 세계 3대 조세회피처로는 케이먼 군도와 말레이시아 북동부, 아일랜드가 꼽혔다. 그 중에서 헤지펀드들이 본거지로 가장 많이 택했던 곳은 조세천국지역으로 인식됐던 케이먼 군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으로 다변화되고 온라인상으로도 빠르게 옮겨지는 추세다. 룩셈부르크 등은 상대적으로 금융위기 충격이 적었던 데다 온라인과 함께 강화된 규제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이후 한국시장에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 자금이 1, 2위를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기재발 방지를 위해 국가별 혹은 오프라인과 온라인별 금융규제를 평준화시켜야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해주는 변화다.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변화를 보면 헤지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효과’는 시정돼야 한다. 특히 우리처럼 외환위기를 경험한 국가일수록 이런 낙인효과가 국민들 사이에 깊숙이 파고들어 금융산업 발전차원에서 헤지펀드를 활성화시키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헤지펀드들도 새로운 변신을 꾀하는 만큼 금융위기로 뒷전에 물러났던 헤지펀드관련 과제들을 이제부터는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우리 국민들도 최근처럼 다시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조만간 또 다른 위기가 닥친다’ 라는 선입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글.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