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굴 지도위 폐지 방침

입력 2010-12-12 09:54
정부가 국내 문화재 발굴현장에서 해당 발굴과 관련한 학술 지도나 유적 처리 방향 등을 자문하는 ''지도위원회''(이하 지도위)를 폐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고고학계와 관련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도위가 법적근거가 없는데다 운영 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어 이의 폐지를 공식화하고 있지만 학계 등은 문화재 발굴.조사를 정부 입맛에 따라 처리하려는 처사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12일 모든 문화재 발굴에서 발굴조사 도중, 혹은 완료 시점에 개최하는 지도위를 완전히 폐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대신 내년 2월 이후에는 ''유적 보존 여부가 논란이 되는 발굴현장에 대해서는 문화재청에서 직접 파견하는 전문가를 통한 현지실사'' 등을 규정한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안을 마련해 시행할 방침이다.



문화재청 심영섭 발굴조사과장은 "지도위는 법적인 근거가 없는 데다 아무런 유적이나 유물이 확인되지 않는 곳에서도 개최되는가 하면, 지도위의 순수한 목적인 학술자문 기능에서 벗어나 문화재청장의 고유 권한인 유적의 보존 여부까지 결정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폐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심 과장은 이어 "법적인 근거가 없는 지도위 개최에 소요되는 비용을 모두 사업시행자에게 물리는가 하면, 각 매장발굴 전문조사기관끼리 해당 기관 관계자를 지도위원으로 초빙하는 사례가 빈발하는 문제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지도위를 폐지하는 대신, 유적 보존 여부가 논란이 되는 발굴현장에 대해서는 문화재청이 지정하는 관계전문가를 직접 현장에 파견해 관련 현안을 조사해 문화재청장에게 보고하며 이에 소요되는 제반 비용 일체는 정부가 부담할 예정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심 과장은 "각 매장문화재 발굴단이 관계 전문가를 불러 학술자문을 구하는 일은 문화재청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면서도 "다만, 그런 학술자문회의에 소요되는 비용은 발굴단의 학술자문료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의 이런 방침에 고고학계와 매장문화재 발굴단에서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신원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한 고고학자는 "기존 지도위 운영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기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순기능도 적지 않은 것을 아예 없애 버리고 문화재청이 모든 권한을 거머쥐겠다는 발상은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도위 대신 문화재청이 지명한 전문가를 현장에 파견해 유적 실사를 하겠다는 발상은 문화재청 맘대로 유적을 처리하겠다는 뜻이며, 그렇게 되면 문화재청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 유적 보존 여부를 자기네 뜻대로 하게 될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 고고학자는 특히 "어떤 면에서 지도위는 발굴조사 활동의 하나로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을 없애는 대신에 정부 예산을 투입해 문화재청이 직접 발굴현장을 조사한다는 발상은 사업시행자가 부담해야 할 발굴조사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A연구원 원장은 "연구원이 비용을 부담하는 학술자문회의를 개최하는 기관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문화재청이 존재하는 이유는 문화재 보호임에도 이를 망각하고 사업시행자의 편의만 봐주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지도위 대신에 문화재청이 권장하는 유적 발굴설명회에 대해서도 "자기 부담인 설명회를 할 기관이 어디 있겠느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