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병곤 센터장 멘트와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해명 추가>>고준위방폐장 부지 12년 안에 선정?…실효성 있나지하연구시설도 4년 안에 건설…시민단체 "실질적 처분 우려"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를위한 로드맵이 30여년 만에 마련됐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12년 안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부지를 마련한다는 계획이지만, 해외 사례와 그동안의 전례에 비춰 볼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이 때문에 원전 내 사용후 핵연료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처리 문제가 시급해지자, 졸속으로 법안을 마련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담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법률안에 따르면 부지선정을 다섯 단계로 나눠 부적합지역 배제(1년)→부지공모(1년)→기본조사와 적합성 평가(5년)→주민의사 확인(1년)→부지 심층 조사 후 확정(4년)까지 2028년 안에 끝낸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연구용 URL(지하연구시설)에 대한 부지 선정 절차에도 들어가 2020년부터는 연구용 URL을 착공할 방침이다.
산업부는 1년 안에 지질조사를 거쳐 부지로 적합하지 않은 후보지를 제외한 뒤12년 안에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까지 모두 마친다는 방침이지만, 해외 사례 등을볼 때 일정 상 무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올해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착수한 핀란드도 수년간의 지질조사를 거쳐 부지를 확정하기까지 23년이 걸렸다.
1978년부터 4년 동안 핀란드지질조사소의 광역지질자료를 검토한 뒤 1983년 102개 광역부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고, 이후 적합한 후보지를 추려 2001년에야 최종부지를 확정했다.
스위스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사업과 관련이 없는 지질조사 자료까지 모아전 국토의 지질조사 데이터베이스(DB)를 확보, 사전에 지표지질조사를 모두 끝낸 뒤에야 부지 선정 절차에 들어갔다.
일본도 처분 부지를 선정하기에 앞서 지질학회가 2008년부터 3년에 걸쳐 정밀조사를 통해 중요한 지질자료들을 도면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와 시민단체, 학계가 모두 참여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해외 여러 나라에서 수년에 걸쳐 사전 지질조사에 공을 들이는 것은 차후 후보지를 선정했을 때 입지 선정의 타당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 기관별로 각 분야에 맞게 작성된 지질자료가 일부 산재돼 있지만,전 국토의 지질 특성을 체계화한 데이터베이스는 없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채병곤 지질환경융합연구센터장은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모두 참여해 자료를 상호 검토하도록 하고, 의견을 수렴해 지질정보 데이터베이스를구축해야 한다"면서 "자료에 대한 투명성이 우선돼야 시민사회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지 선정 절차에서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면, 한창 일이 진행되고 나서처음으로 되돌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도 "미국도 1980년대부터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대한 연구를 진행했지만, 아직도 처리 방식을 결정하지 못했다"면서 "관련 기술이충분히 개발됐는지, 지역 주민들로부터 수용성을 확보했는지 등에 대해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국내 사례를 봤을 때도 일정대로 추진이 가능할 지 불투명하다.
사용후 핵연료 정책은 1983년부터 역대 정부가 9차례에 걸쳐 추진했으나 지역여론 악화 등에 부딪혀 무산됐다.
충남 태안과 전북 부안에서는 중·저준위 폐기물 저장 시설 부지 선정을 두고주민 반발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장 4년 후에 건설하기로 한 연구용 URL(지하연구시설)에 대해서도 사회적인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연구용 URL은 포괄적인 고준위방폐물 R&D(연구개발)와 처분 실증 실험을위한 연구용 시설로, 잠재적인 처분 부지에 위치하는 인허가용 URL과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연구용 URL이 실질적인 고준위 방폐물 처분 부지로 전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하고 있다.
실제 일본의 경우 개방형 공모제를 통해 연구용 URL 부지를 선정하는 절차에 돌입했지만, 몇 차례의 실패 끝에 결국 정부가 직접 과학적으로 적합한 지역을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20년 사용 조건으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부지를 빌려 연구용 URL을 건설했지만,만료 기한이 다가오면서 지역사회가 연구용 URL을 반환하겠다며 원상 복구해줄 것을요구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4년 SK건설이 경북 울진군에 지하연구시설 건설을 추진하려다 지역사회의 반발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간 바 있다.
이헌석 대표는 "정부는 과거에 경주에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시설을 유치할 때고준위 폐기물 처리시설은 함께 짓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을 지으려 하고 있다"면서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어 지하연구시설을 짓는데 당연히 '그냥 그곳에 처분하자'는 논의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정부가 포화 상태에 이른 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리하게 일정을강행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원전 내 고준위 방폐물을 처분하기 위한 임시저장시설 계획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서둘러 영구처분계획을 담은 법안을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채병곤 지질환경융합연구센터장은 "고준위방폐장 부지 선정에는 사회적인 수용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사용후핵연료를 직접 처분할 것인지 또는 동굴 방식으로처리할 것인지 등 국내 처분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핀란드와 스위스 등 해외 선행 사례가 있는 만큼 처분까지 12년 안에 가능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사용후 핵연료 처분 공론화 과정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며, 이전 정부 때부터 지속적으로 논의해온 것"이라면서 "처리 계획에대한 반대 때문에 처분 부지를 정하지 못하고 계속 늘어지면서 더이상 늦춰서는 안된다는 판단에 따라 대책을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채병곤 센터장은 지난 10일 원자력환경공단 주최로 대전 레전드호텔에서 열린 '고준위폐기물 관리기술' 전문가 토론회에서 해외 고준위폐기물 처분장 선정사례와시사점에 대해 발표했다.
이날 한국원자력연구원 김경수 부장,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윤정현 실장 등 원자력 관련 산학연 전문가 100여명이 참석해 해외 고준위폐기물 처분 기술개발 현황과연구용 URL 확보 방안 등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을 벌였다.
jyoung@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