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재테크 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하나의 통장으로 다양한 금융상품을 굴리면서 최대 200만~250만원의수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 전부터 가입 대상자들의구미를 당길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창 가입자를 모으며 덩치를 키워야 할 시점이 됐지만 실상은 그러지못하다.
이렇게 된 데는 시행 초기 단계에서 실적 경쟁으로 내몰린 금융사들이 '깡통 계좌'를 양산해 따가운 시선을 받은 상황에서 일임형 상품 수익률 공시에서 무더기 오류가 발견되는 등 신뢰에 금이 가는 사태가 발생한 영향이 크다.
이 때문에 ISA를 출시하기 전에 금융당국은 물론 금융사들이 좀 더 철저히 준비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7월 증권사 가입자 마이너스 성장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월 말 증권사 ISA 가입자는 23만2천997명으로 집계됐다. 전월의 24만3천126에서 1만명 이상 줄어든 것이다.
이는 ISA 일임형 수익률 공시에서 무더기 오류가 난 탓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분석이다.
7개 금융사의 일임형 모델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엉터리인 것으로 판명됐는데, 7곳 중 IBK기업은행[024110]을 제외한 6곳이 증권사였다.
고객이 직접 투자상품을 선택하는 신탁형과 달리 금융사가 모델 포트폴리오(MP)를 구성하고 상품 선택과 운용을 맡는 일임형은 증권사들이 은행에 비해 강점이 있는 분야다.
이 때문에 일임형 상품에 대한 신뢰가 깨진 데 따른 타격은 증권사가 클 수밖에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처음에는 기업은행 때문에 사태가 커졌는데 증권사만 큰피해를 보게 된 셈"이라며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익률 오류는 어느 정도 예견된 측면이 있다.
ISA가 워낙 생소한 금융상품이다 보니 금융사 직원들도 상품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일임형 상품에 담긴 펀드 등의 수익률을 계산하는것이 복잡하다"며 "금융사에서 펀드의 수익률을 계산하는 전문 인력이 따로 있지만ISA 담당자가 수익률을 전부 계산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ISA 출시 초기에는 불완전 판매 문제가 대두했다.
금융사들이 과도한 실적 경쟁을 하느라 직원들을 마구잡이로 가입시켜 1만원 이하 깡통계좌가 속출했다.
또 은행이든 증권사든 ISA의 상품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고객에게 설명할 수있는 창구 인력이 많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직장인 최민섭(38) 씨는 "몇 달 전 ISA 상담을 받으려고 은행에 갔는데 직원은특판 예금 설명만 했다"며 "수수료 등 ISA 관련 질문을 했지만 자세한 답은 거의 듣지 못해 가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탁형의 경우 은행은 예금, 증권사는 환매조건부채권(RP)등 특정 상품을 중점적으로 편입하는 현상이 계속돼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서굴린다는 ISA의 기본 취지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7월 말 은행의 신탁형 상품 가입액 1조5천778억원 중 예금 가입액이 1조904억원(69.1%)에 달했다.
증권사도 신탁형 자산의 32.8%를 RP에 집중한 모습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ISA는 세제혜택이 있다고 하지만 적잖은 수수료로떼이는 구조여서 서민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이 아니고, 금융회사도 이를 운용할역량이 없다"며 "10월 일임형 수수료가 다시 공시되면 ISA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보기 위해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가입자 범위·세제 혜택 더 늘려야" 세제혜택을 기대한 금융 소비자들은 3~5년의 의무 가입 기간은 너무 길고 200만~250만원의 순이익 상한은 너무 낮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실제로 ISA에 돈을 넣고 보면 수익률도 눈에 띄게 높지 않은데 당분간 돈을 빼내지도 못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가 많다.
만기 전에 계좌를 해지하면 세금 감면을 받을 수도 없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ISA가 만기까지 돈을 넣어둘 만한 상품인지는 사실 의문"이라며 "초기엔 ISA 자체보다는 특판 예금이나 RP 등 미끼상품 때문에 가입한 고객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재 소득이 증명되는 사람으로 제한돼 있는 가입자격을 학생과 주부등으로 확대하고 세제혜택을 받는 순이익 상한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특정 금융상품 가입자에게 세금을 깎아주기가 쉬울 순 없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우리로선 ISA가 좀 더 확산할 수 있도록 가입자 대상이나 세제혜택을 확대할 수 있으면 좋지만, 세수가 줄어드는 문제는 쉽게 접근할 수없는 사안"이라며 "ISA가 국민의 종합 재테크 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책을 계속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에 대해선 너무 조급하게 ISA 관련 제도 변경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템포'를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 ISA가 출시된 이후 수개월간 은행의 일임형 ISA 상품 취급 허용을 비롯해 온라인 가입, 수수료 및 수익률 공시, 계좌 이동 등 제도 변경이 쉴 새 없이쏟아져 소비자는 물론 금융사도 피로감이 쌓이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ISA 계좌 이동을 앞두고 은행들이 금융위원회가 제시한 시일(7월 1일)내에 전산망 구축을 완료하지 못해 일정이 보름 이상 연기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ISA는 분명 자산가만 할 수 있었던 포트폴리오 투자를 서민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제는 흥행보다는 이 상품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을 해주면 가입자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anana@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