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회계법인 책임·제재 강화 여론 '넘사벽' 있다

입력 2016-05-31 05:01
회계업계 강한 반발로 핵심 규제강화 조항 입법 번번이 무산



조선·해운업계가 대규모 부실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자본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회계법인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계법인의 의무와 책임을 강화하고 문제를 일으킨 곳에는 퇴출 등의 강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그러나 회계법인의 책임을 높이고 제재 수위를 올리기 위한 법률안이 만들어질때마다 업계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번번이 무산되거나 누더기 수준으로 축소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대책을 내놓고 감시와 견제를 강화하려 해도 근거가 되는 법률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으니 부실감사와 모럴해저드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31일 금융당국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인회계사가 자신이 감사하는 회사에 대해맡을 수 없는 비감사 업무 항목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 공인회계사법이 올 9월 말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회계법인이 특정 회사의 감사와 컨설팅 등 감사 외 업무를 동시에 맡아독립성이 약해지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개정이 추진됐다.



최근 회계법인들이 돈이 되는 컨설팅 업무를 수주하기 위해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감사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새 법 시행으로 9월 말부터 회계사는 감사를 맡은 회사에 대해 ▲ 민형사 소송자문 ▲ 인사 및 조직 지원 ▲ 회사의 자산 등을 매도하기 위한 실사와 가치평가 업무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이 법안을 추진할 때 기업이 매도뿐만 아니라 매수하려는 자산에 대한 가치평가, 구조조정과 관련한 평가도 금지항목에 포함하려 했지만 회계업계의 반대로 관철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한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아 '적정' 의견을 낸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상황이 돼도 이 회계법인은 계속 구조조정 관련 실사를할 수 있게 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는 미국과 일본에선 허용되지 않는 사안이어서 법 개정때 금지항목에 넣으려 했지만 회계업계의 반발로 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럽에서는 감사 수입의 70% 이내로 컨설팅을 제한하는 등 액수 제한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업계 의견이 반영돼 관련 규정을 강화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부실감사를 한 회계법인에 대해서는 대표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하지만 정부가 이와 관련해 마련한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법률 규정 개정안은 지난 3월 규제개혁위원회 심의에서 백지화됐다.



분식회계를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 회계법인의 경우 대표까지 직무정지, 해임권고, 검찰 고발 등의 제재 대상에 넣으려 했지만 '대표가 일일이 개별 사안을 제대로알 수 없다'는 이유로 철회 권고가 내려진 것이다.



분식회계 등을 저지르고 해임이나 면직된 기업 임원을 2년간 상장사에 취업하지못하게 막는 법안도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입법화가 무산됐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규제개혁위에서 내린 철회 권고를 거부할 수 없지만 다른법안에 반영하는 등 관련 내용을 관철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당국이 2011년 말 발표했던 '상장법인 감사인등록제' 도입 역시 업계의 반발 때문에 흐지부지됐다.



이 제도는 상장법인의 경우 일정 수준이 되는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게 하려고추진됐지만 밥그릇을 잃을 것을 우려한 회계법인들이 크게 반발하자 결국 백지화됐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다수의 개인 투자자가 투자하는 회사는 엄격한 회계 감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며 "개인적으로 이 법안은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보지만 지금으로선 추진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조선·해운업계의 대규모 부실로 혈세 투입이 불가피한 구조조정 이슈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감사에 따른 보수만 챙기고 엉터리 결과를내놓아 국민경제에 큰 부담을 안긴 회계법인들의 책임을 엄중히 따져 물어야 한다는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작년 대우조선해양[042660]의 수조원대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회계절벽' 사태에 이어 올해 현대상선[011200]과 한진해운[117930]이 채권단 공동관리를받으면서 용선료 인하 협상에 목숨을 건 상황으로 내몰렸지만 그간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들은 어떤 경고음도 내지 못했다.



심지어 국내 업계 1위인 삼일회계법인 안경태 회장의 경우 한진해운 실사를 하면서 얻게 된 정보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000700] 회장)에게 귀띔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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