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주 전도사 이채원 "삼성전자, 애플 이기는 법 알았다"

입력 2016-05-23 06:01
"예전에 많이 벌어놓은 기업, 주목받는 시기 올 것"



"성장주보다 가치주가 다시 주목받을 겁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부사장)는 지난 2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올 하반기부터 성장주에서 가치주 중심으로 투자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부사장은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계속되면서 성장에 대한 갈망으로 성장주에집착하는 '모멘텀 투자' 현상이 나타났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산가치가 높은 기업이나 크게 성장하진 못하지만, 또박또박 자기 영역을 지켜온 기업들이 재평가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불황에도 변하지 않는 자산가치를 보유한 지주사나 안정된 영업기반을 구축한필수 소비재 업종이 바로 이 부사장이 주시하는 가치주, 즉 투자의 대상이다.



2014년 말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처분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작년부터다시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실제 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이제야 스스로 뭘 잘하는지 깨달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 부사장은 "스마트폰에 엣지 화면을 도입하고 첨단 기술의 방수 기능을 집어넣는 등 삼성전자는 주전공인 하드웨어 부문에서 다시금 혁신하고 있다"면서 "애플을 이기는 방법을 이제야 안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국내외 주식 시장을 연구한 결과, 10년 단위로 성장주와 가치주가 바통을 주고받으면서 전성기를 누려왔다고 분석했다.



10년간 가치주가 수익을 올리면 1~2년은 성장주가 돈 벌게 해 주는 사이클이 반복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내 성장주들은 2014년 이후로 정점에 달했다가 이제 약발이 다했다고 평가했다. 그때그때 상황을 봐서 '베팅'하는 투자전략이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얘기다.



이 부사장은 "저성장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고여있는 물을 정화해서 마셔야 하는데 올 하반기부터 바로 그러한 현상이 가시화할 것"이라며 "지금은 못 벌어도 예전에 많이 벌어놓은 기업들이 주목받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부사장은 1990년대부터 펀드 시장에서 가치투자의 귀재로 불려왔다. 그러나그에게도 좌절의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원증권에서 일하던 1998년 국내 최초로 '가치투자' 개념을 적용한 '동원밸류이채원펀드 1호'가 빛을 보지 못하고 청산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운용하던 펀드 가치가 40%나 폭락했죠. 그때 두 번 다시는실수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만든 게 동원밸류이채원펀드 1호였는데 성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치투자에 대한 그의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2006년 자신이 이끌던 자산운용본부 직원들을 데리고 나와 현재의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차렸다. 이 회사는 한국투자증권의 자회사로, 그룹 내에서 장기적인 자산운용만 담당한다.



10년간 누적 수익률 약 157%를 기록한 '한국밸류10년투자' 펀드는 그가 가치투자 시장에 컴백해 내놓은 대표적 성공작으로 꼽힌다.



그는 "10년간 '뭘 사면 돈을 잃지 않을까'라는 원칙을 지켰다"면서 "주가가 오르면 당장 팔고 싶은 욕심, 대박을 내고 싶은 탐욕을 버리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ཆ년 펀드'가 성공을 거두면서 2007년 펴낸 그의 저서 '이채원의 가치투자'도주목받고 있다.



누적 판매량은 약 10만 권. 그는 인세 전액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그는 현재 '이채원 키즈'로 불리는 공채 출신 매니저 14명을 데리고 총 6조원규모(공모 기준)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이들 14명은 그가 직접 면접장에 들어가뽑은 인재들이다.



1988년 입사 시점부터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을 펀드 운용에 몸담아 온 이 부사장은 유행에 따르지 않고 신념을 지켜 승부를 보는 가치투자의 매력은 끝이 없다고 했다.



이 부사장은 "회사에선 주식 바보, 집에선 딸 바보로 통한다"면서 "일할 때가가장 즐겁다"고 귀띔했다.



gorious@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