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행정 편의주의'도 슈퍼 주총데이 부채질미국 상장기업들은 '여유 있는' 4∼5월 주총 열어
"금융당국의 행정 편의주의가 '한날한시 주총'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처럼 상장사들이 사업보고서 제출 이후에 주총을 열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합니다." 박경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고려대 교수)은 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주총이 비정상적인 양상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로 주총의 특정일 집중 현상을 꼽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상장사들은 3월 둘째 주 금요일과 셋째 주 금요일에 집중적으로 주총을 개최한다. 오는 21일에는 662개사가 주총을 연다.
박경서 원장은 '주총데이'에는 주주들의 참여를 어렵게 해 의안을 일사천리로통과시키려는 기업들의 의도도 담겨 있지만, 사업보고서를 주총 승인 이후에 제출하도록 한 자본시장법 규정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이 사업연도 종료 이후 90일 이내로 정해져있고, 사업보고서는 주총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결산→외부감사→주총 소집 공고→주총'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몰아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주총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무관심과 단기 차익실현을 목적으로 하는투자 문화도 주총 내실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았다.
다음은 박 원장과의 일문일답.
-- 국내 기업들의 주총 개최일이 3월에 몰려 있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 상법 규정상으로는 주총을 4∼5월에 열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회사가 미리 정한 날인 '기준일'에 주주명부에 기재된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면 되고, 기준일은 주총 개최일로부터 3개월 이전의 날이면 된다. 기업들이 그간 관행적으로 회계연도 말일을 기준일로 정해온 셈이다.
문제는 자본시장법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은 회계연도 종료 이후 90일 이내이다. 금융당국이 주총 승인을 받은 사업보고서 제출을요구하고 있어 3월 안으로 반드시 주총을 열어야 하는 구조다.
-- 금융당국이 업무 관행을 바꾸면 주총 쏠림 현상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인가.
▲ 주총이 몰리는 또 다른 이유는 금융위원회에서 정한 사업보고서 공시 양식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3사업연도 중 배당금 총액, 배당수익률, 주당 배당금'을 기재해야 하는데, 배당금은 정기 주총에서 승인받은 금액이어야 한다.
금융위나 금융감독원에서는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정보인 사업보고서에 수정 사항이 없도록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바뀐 정보가 있다면 제대로 공시를 하면 된다.
굳이 주총 승인을 받은 사업보고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로도 해석될 수 있다.
-- 다른 나라에도 주총 쏠림 현상이 있나.
▲ '주총데이'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일부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미국,영국, 독일, 호주에서 주총은 보통 두 달에 걸쳐 분산돼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주총 이전에 사업보고서를 주주들에게 공개하기 때문이다. 12월 결산법인이라면 3월말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고 이후에 여유롭게 주총을 열면 된다. 대다수 미국 상장사가 주총 40∼50일 이전에 소집 공고를 낸다.
-- 사업보고서 제출 이후 주총을 열면 주총 개최일이 분산되는 것 이외의 장점도 있나.
▲ 주주들이 확인할 수 있는 정보량이 훨씬 많아진다. 주총 이전에 사업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으면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와 배당, 이사 보수한도 등을 비교해보기어렵다. 비슷한 회사들의 정보를 쭉 늘어놓고 비교를 하면 주주들이 더 합리적으로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 부실도 문제로 지적된다.
▲ 주총에서 주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기관투자자다. 그러나 국내 기관들은재벌 계열사이거나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을'이라 의결권 행사에 소극적이다. 돈을맡긴 고객보다 투자 대상인 기업과 더 가까운 이상 현상은 외부의 규제나 압력이 없으면 바뀌기 어렵다.
기업지배구조원은 미래에셋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등 기관투자자들이 어떤 주총 안건에 찬성하고 반대했는지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포털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다음 주총 때부터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개인의 주총 참여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무엇으로 보나.
▲ 외국에서는 기관을 대상으로 한 투자자 소송이 잦은데 국내에선 '기관이 내돈을 제대로 운용하나' 따지는 개인들이 없다. 개인이 소극적이기 때문에 기관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답이다. 일본 주총에서 최근 개인들이 주총에나타나 경영진과 갑론을박하는 사례가 나타나 눈길을 끌고 있다. 초저금리 상황에서개인이 주식 투자를 늘리고, 장기 투자하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다.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소액주주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고, 경영진을 견제하는 효과도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chopark@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