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 대통령 대선 공약 집단 거부…경제민주화 외면삼성전자 소액주주 보유주식 56%지만 총수 견제 불가능
올해 주총에 참석할 수 없는 주주들을 위해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전자투표제'를 실시하겠다고 신청한 기업은 1개사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투표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내건 대선 공약이지만기업들의 집단 거부로 외면받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올해 주총을 앞두고 전자투표제를 신청한 기업은 한곳도 없다고 18일 밝혔다.
기업이 주총에서 전자투표제를 활용하려면 이사회 결의로 채택하고 사전에 예탁원과 전자투표관리업무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3월 주총에서 전자투표제 이용을 위해 계약 체결을 신청한 곳 중에는 일반 기업이 없고 페이퍼컴퍼니인 선박투자회사 6곳 정도에 그쳤다.
전자투표제는 주총에 참석할 수 없는 주주를 위해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할수 있도록 마련한 제도로 2010년 도입됐다.
지금까지 이를 채택한 곳은 45곳이며 이중 선박투자회사가 36곳, 한국주식예탁증서 형태의 외국업체가 5곳, 비상장사 3곳, 상장사 1곳 등이다.
전자투표제가 도입된 것은 주총이 주로 서울과 경기지역에 집중되고 매년 3월특정 날짜에 몰려 주주 참여가 제약받기 때문이다.
올해도 삼성전자[005930], 현대자동차[005380] 등 12월 결산 상장사 116곳이 이달 14일 한날한시에 주총을 열었다.
두 곳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소액주주는 주총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고, 주총이대주주 의도대로 안건을 통과시킨 채 일사천리로 끝나기 일쑤다.
한국상장사협의회가 2011년 4월∼2012년 3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306곳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 결과, 평균 주총 소요시간은 불과 32.1분이었다.
주총 시간이 21∼30분이라는 회사가 141곳으로 가장 많고 심지어 1∼20분이라는곳도 42곳이었다.
전자투표제는 도입 당시 이런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로 주목받았지만 기업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유명무실한 상태다.
기업들이 전자투표제를 반대하는 것은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액주주들이 반대 목소리만 높일 경우 주총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는것이다.
하지만 재벌 기업들이 전자투표제를 거부하는 것은 소액주주의 의결권 행사를막아 대주주에 대한 견제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더 많다.
재벌 기업의 대주주들이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서도 소액주주를 외면한 채 주총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데는 '섀도 보팅' 제도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섀도 보팅은 기업이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의 투표권을 임의로 행사하는 제도로, 기업들이 이 제도를 주총의 정족수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탁원은주총이 무산되지 않도록 주총 전 신청한 기업에 한해 예탁된 주식의 의결권을 빌려준다.
소액주주들이 주총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해 정족수를 맞출 수 있는데 돌발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대주주 뜻대로 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크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6월 말 보통주 기준으로 주주 17만3천285명 중 소액주주는 17만3천222명으로 99.96%에 달하고 보유주식 수 비중도 56.08%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섀도 보팅이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본시장법을 개정, 내년에는 섀도 보팅 제도가 폐지된다.
섀도 보팅이 폐지되면 의결정족수가 부족한 기업은 전자투표제에 더욱 관심을가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지난해 7월 전자투표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상법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재계 반발로 다시 방안을 마련 중이다.
수정안을 만들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국회로 넘어가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보인다. 국회에서도 경제민주화 후퇴 등을 놓고 이견이 클 수밖에 없어 국회 통과도시기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자투표제가 정착되려면 우선 대기업이 솔선수범해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함영대 예탁결제원 전자투표팀장은 "올해도 전체 상장사에 전자투표제를 권유하는 안내문을 보냈지만 채택한 곳은 없다"며 "내년에 섀도 보팅이 폐지되므로 관심은조금씩 보이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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