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업계 토종 실력파 "웅진그룹, 올해 법정관리 졸업""은행은 창조금융과 거리 멀어…자본시장이 주역이다"
"지난해 웅진그룹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경험했습니다." 국내 투자은행(IB)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진 정영채 우리투자증권 IB 수장(대표)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다소 의외였다.
엄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투자증권은 해마다 IB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의 위치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14일 자신을 '지옥'으로 이끈 '웅진그룹 사태' 얘기부터 꺼냈다.
웅진홀딩스가 MBK파트너스와 웅진코웨이 매각 계약을 맺을 당시 우리투자증권은매각 자문사로 들어갔다. 그러나 2012년 9월 26일,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것. 정 대표는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미국 출장을 갔다가 인천공항에 입국했는데 휴대전화에 직원들의 부재중전화와 '큰일났다'는 문자가 30여통씩 찍혀 있었다"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은 정 대표가 1년 반 끊은 담배를 다시물게 할 만큼 아찔했던 소식이었다. 웅진코웨이 매각대금 납입 일정을 앞두고 웅진홀딩스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정 대표는 "매각 날짜를 이틀 앞두고 법정관리에 들어가니 돈을 날릴 위기에 처한 투자자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 하지만, 직원들과 투자자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했다. 시간을 두고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약속을 지켜냈다. 꼬인 실타래를 풀어 웅진코웨이를 시작으로 웅진케미칼과 웅진식품 매각이 차례로 이뤄졌고 웅진그룹은 올해 법정관리 졸업을 앞두고 있다. 시작은 매각 주간사로 연을 맺었지만, 웅진그룹의 꼬인 구조조정 전반을 풀어내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정 대표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 대우증권 등을 거쳐 2005년 우리투자증권에서 IB 사업부를 꾸린 국내 IB업계의 산 증인이다. 웅진그룹처럼 구조조정 전반을 다뤄본 건 처음이었다.
정 대표는 "웅진그룹은 올해 3∼4월 법정관리를 졸업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10년 새 기업회생에 들어간 기업 중에 가장 깔끔하게 정리된 사례"라며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웅진을 떠올리면 아픔도 있었지만, 보람도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동안 기업 구조조정이 은행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웅진그룹은 자본시장으로 회생하게 된 첫 사례다. 자본시장이 많이 커진 만큼 자본시장을 보는 시각도달라져야 한다"며 "금융산업이 창조금융과 거리가 먼 은행 중심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창조금융이 이뤄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본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사모펀드(PEF)를 대하는 자세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애초 1조원으로 시작한 국내 사모펀드 시장이 지금은 50조원까지 불어났다"며 "시장에 매물은 많이 나와 있지만 실제 투자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매물은많지 않다. 최근 시장과 주요 산업이 침체 빠지다 보니 투자자금도 돌지 않고 기업인수.합병(M&A)시장도 불이 붙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우리의 주요 고객사도 사모펀드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우리투자증권은 국내 IB에서 절대 강자로 통하지만, 글로벌 IB와 비교하면 아직갈 길이 멀다.
경쟁자를 꼽아달라는 물음에 인터뷰 내내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인 정 대표의 얼굴은 고심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몇 초간 뜸을 들인 정 대표는 "골드막삭스와 씨티은행 등 외국계 IB들은 경쟁자라기보다 빨리 쫓아가야 할 대상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답했다.
유학파가 많은 IB 업계에서 '토종 실력파'로 수완을 발휘한 정 대표가 넘어야할 산도 외국계 IB인 셈이다.
그는 "국내 IB 업계가 상대적으로 뒤처진 것은 한국형 IB의 성장 기반 마련에도움을 줄 자본시장법 개정이 늦어진 탓도 있지만, 업계 스스로 반성할 부분도 많다"며 "국내 증권업의 DNA가 위탁매매업 중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줄어드니까 증권사 수익이 급격히 나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올해 계획과 관련한 질문에 그는 "고객들에게 더 깊이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것"이라고 주저 없이 답했다.
정 대표는 "우리투자증권은 주식발행시장(ECM), 인수합병(M&A), 인수금융, 기업금융(IPO) 등 모듈별로 종합서비스를 할 수 있다"며 "국내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이가 한 곳도 빠지지 않아 음식을 제대로 씹어줄 수 있는 만큼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일단 연초 기업 M&A시장의 이슈로 떠오른 LIG손해보험의 인수 자문사를 따내는 것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LIG손보 매각자문사 역할은 외국계에 넘어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수 자문사 역할을 따내면 된다. 이미 롯데그룹과 한화·메리츠·보고펀드 등에 인수 참여의사를 타진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kong79@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