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후폭풍> ② 역사로 배우는 출구전략의 교훈

입력 2013-06-23 06:00
1994년 중남미 경제위기 초래 vs 2004년 연착륙 성공2004년과 달리 세계경기 안좋은 것이 연착륙 '걸림돌'



"1994년 중남미 경제위기와 2004년 연착륙 성공, 이번에는 어느 쪽일까"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양적완화 출구 전략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과거 연준이 양적완화를 철회하고 긴축에 나섰던 역사적 경험들이 주목받고 있다.



연준이 장기간의 저금리 기조에서 벗어나 금리 인상으로 돌아선 가장 대표적인사례로는 1994년과 2004년이 꼽힌다.



미국 경기 과열을 우려해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목표금리를 2배 이상 대폭 인상한 것은 공통적이지만, 신흥국 등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은 매우 달랐다.



◇ 1994년, 예고 없는 초고속 금리 인상 연준은 1994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목표금리를 7차례에 걸쳐 3.0%에서 6.0%로 인상, 불과 1년 만에 기준금리를 3%포인트나 올렸다.



긴축에 대한 사전 신호를 주지 않고 불시에 인상을 단행한데다가, 한 차례에 최대 0.75%(75bp)포인트씩 올린 인상 속도 모두 금융시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었다.



시장은 무방비 상태로 금리 인상의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됐고, 񟬺년 채권시장 대학살'로 불리는 미국 채권시장의 폭락 사태가 빚어졌다.



훨씬 더 큰 충격파가 닥친 곳은 멕시코 등 중남미 신흥국들이었다.



금리 인상 전 저금리에 기반한 대량의 미국의 유동성이 멕시코 등 중남미에 유입돼 주식시장 호황을 가져왔다.



23일 동부증권에 따르면 미국 유동성 유입이 본격화된 1989년부터 1994년까지멕시코 주가는 약 30배 가까이, 아르헨티나 주가는 약 20배 이상 폭등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 이후 이러한 미국발 중남미행 캐리 트레이드(국가간 금리 차이에 바탕한 거래)는 청산됐고 막대한 유동성이 급속히 빠져나갔다.



그 결과 멕시코·아르헨티나에서는 주가가 1년 만에 고점 대비 50% 이상 폭락하는 등 중남미 금융시장이 뿌리째 흔들렸다.



결국 멕시코는 '테킬라 위기'로 잘 알려진 외환위기를 맞아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됐고, 이러한 위기는 중남미 전역으로 퍼져 각국이 경제위기를 겪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말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1994년의 사례를 들어 "연준의 양적완화 중단이 세계 금융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 다시는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고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 2004년, '준비된' 인상으로 세계경제 연착륙 2004년의 긴축 사례는 1994년과는 대조적이다.



연준은 그 해 6월부터 2006년 6월까지 기준금리를 1.0%에서 5.25%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은 10년 전 서투르고 과격한 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제에 혼란을 가져왔다고 비판받은 기억을 잊지 않았다.



그린스펀 의장은 그 해 1월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에서 "금리를 상당 기간(for a considerable time) 낮게 유지할 계획"이란 문구를 삭제해 시장에 사전 신호를 내보냈다.



인상 속도도 2년의 기간을 두고 한 번에 0.25%(25bp)포인트씩 17차례로 나눠 시장에 주는 충격을 줄였다.



이처럼 시장에 대비할 시간을 주고 조심스럽게 접근한 결과, 각국 주가는 인상3∼5개월 전부터 인상 전망을 반영해 조정을 받다가 금리를 인상한 직후에는 상승세로 전환하는 흐름을 보였다고 SK증권은 설명했다.



실제로 신흥시장 주가를 나타내는 모간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지수는 금리 인상 기간에 400대 초반에서 700~800대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한국 주가도 그해 상반기에 900대에서 70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가 8월부터 반등, 800대 후반으로 거의 회복했고 원·달러 환율도 금리 인상 이후 오히려 하락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경기 호조와 중국의 호황 등으로 세계 경기가 양호했던 시기여서 금리 인상의 여파를 잘 흡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유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었고, 유럽도 시차를 두고 기준금리를 인상할 정도로 성장이 견고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중국의 글로벌 수요도 뒷받침하면서 이들 수요를 통해 국내 증시는 오름세를 이어가고, 원·달러 환율도 수출을 통한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하락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 출구전략 대비 시간 있지만 불안 요소 '지뢰밭' 향후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기조는 1994년과 2004년 중 어느 쪽에 가깝게 될까.



우선 긍정적인 요인은 연준이 시장에 대비할 시간을 2004년보다도 더 많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FOMC에서 연준은 미국 경제가 전망대로 간다면 올 연말부터 양적완화를 줄이기 시작, 내년 중반에는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소한 향후 1년 간은 양적완화의 강도는 낮추더라도 완화 기조는 이어간다는것이다.



게다가 본격적 긴축인 금리 인상에 대해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먼 미래의 일"이며 인상의 기준인 실업률 목표치를 낮추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2015년 이후에나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효진 SK증권 연구원은 "1994년과 2004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금리 인상의 사전 신호 여부였다"며 "이번에 양적완화 축소를 6개월가량 앞두고 계획을 밝힌 것은금융시장 변동성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2004년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 상황은 2004년식의 낙관적 시나리오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세계실물 경제가 그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김유미 연구원은 "미국 경기의 회복 속도는 완만하고, 유럽은 실업률 상승으로내수 위축이 지속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내부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하반기 경기회복이 불투명하다"며 "현 세계 경기는 아직 확신을 주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그간 세계적 양적완화 기조 아래서 신흥국들의 부채가 급속히 늘어난 것은 최대의 위험요소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초저금리로 인해 일부 신흥국가에서 외채와 자국내 금융 부채가 과도하게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미국 금융정책이 긴축으로 바뀔 경우 이들 국가는 이자 부담이 증가하고 만기 연장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인도네시아, 브라질, 터키, 중국, 멕시코, 인도 등이 금융 불안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는 다만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외환시장 불안 당시와 비교하면 외채 규모는 작고 외환보유액은 늘었으며 경상수지도 확실한 흑자 기조"라며 미국 출구전략으로 인해 "한국 금융시장, 특히 외환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전망했다.



jhpark@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