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했던 삶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면 무엇에 기대 살아가야 할까. 지난날의 영광을 어떻게든 붙들어야 할까, 아니면 굴종적으로라도 현실에 맞춰 살아야 할까. 테네시 윌리엄스의 고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극단 툇마루는 8~11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원작은 1947년 현지 무대에 올라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국내에는 1955년 초연된 후 꾸준히 관객을 만나 왔다.
작품에서 몰락한 미국 남부 명문가 출신 블랑쉬(송선미)는 제목에서처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동생 스텔라(사강)의 집을 찾는다. 살 곳도 일자리도 잃었지만, 차림새와 말투에는 귀부인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는 허름한 집과 제부 스탠리가 못마땅해 동생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정작 스텔라는 언니의 타박에도 명랑하다.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언니보다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동생이 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런 구분은 흐려진다. 스텔라도 다른 선택 기회가 없어서 하루하루를 살아낼 뿐이라는 점을 내비친다.
끔찍한 일이 벌어진 뒤에도 스텔라는 단절을 선택하기 어렵다. 환상과 현실을 상징하는 듯했던 자매가 닮았다는 점이 작품을 깊게 만든다.
쇠락하는 미국의 옛 질서가 새로운 환경에 맞부딪힌다는 시대적 배경은 오늘 관객에게 별다른 장벽이 되지 않는다. 과거에 집착하고,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꾸며내길 좋아하는 모습은 지금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블랑쉬는 어두운 환경에서만 사람을 만나고, 밝은 실내 전구까지 갓으로 감싼다. 각색을 맡은 박경희 작가는 공연 브로셔에서 “꾸며낸 나를 지키느라 정작 진짜 내 모습을 잃어버린 우리네 삶은 블랑쉬가 전등갓으로 전구의 빛을 가리는 모습과 닮았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서 송일국은 블랑쉬의 과거를 집요하게 들추는 스탠리 역할을 무게감 있게 소화했다. 조금희 연출은 지난 간담회에서 “블랑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원작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파격적으로 스탠리에 포커스를 맞춰 극이 진행된다”며 “스탠리의 폭력성과 야만성, 연민의 부족이 우리 사회에서는 정당한 것인가를 담아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