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분기 영업이익이 거의 9배 가까이 증가했고, 대만 TSMC는 매출이 51% 급증했는데도 두 회사 모두 8일(현지시간) 주가가 하락했다. 글로벌 분석가들은 투자자들의 기대치가 높을대로 높아진데다 부채에 의존한 인공지능(AI) 투자붐에 대한 우려가 최근 급격히 부각된 것이 투자심리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8일 세계 최대 메모리칩 제조업체인 삼성전자는 3분기에 107조 4천억 원(약 801억달러)의 영업이익(잠정치)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세계 기술 기업가운데 분기에 800억달러가 넘는 영업이익을 낸 것은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엔비디아가 지난 분기에 기록한 영업이익이 637억달러, 애플이 지난 분기 기록한 영업이익 509억달러를 가뿐히 넘어섰다. 그럼에도 영업이익은 분석가들의 평균 예상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3분기 매출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사상 최고 실적 발표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이 날 서울 증시에서 전 날보다 2.4%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부채 증가로 형성된 AI 투자 호황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걸림돌이 됐다고 평가됐다. 특히 전 세계적인 금리 상승으로 대규모 자본지출 계획이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AI 투자 지속 가능성에 투자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토로의 아시아 태평양 수석 분석가인 조쉬 길버트는 "삼성은 사상 최고 수익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데, 이는 AI 관련 사업이 얼마나 까다로워졌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AI 관련 사업에 대한 의구심은 이 날 AI 애플리케이션 주문 급증으로 3분기 매출이 51% 급증한 1조 4900억 대만달러(약 467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TSMC의 주가도 하락시켰다.
도쿄 증시에서 삼성전자와 TSMC의 협력업체인 도쿄전자, 어드밴테스트, 이비덴 등의 주가도 하락했다.
엔비디아와 AMD, 애플 등 주요 기술업체의 칩을 위탁 생산하는 TSMC는 시가총액 2조1천억달러로 아시아에서 가장 가치있는 상장기업으로 평가받는다.
두 회사 모두 AI투자 붐에 매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으나 위탁제조만 하는 TSMC와 비교해 삼성전자는 여전히 경기를 타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라는 인식까지 더해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로이터가 집계한 분석가들은 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4분기에는 둔화되면서 삼성전자의 이익이 전 분기 대비 8.2%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3분기 이익이 전 분기보다 20% 성장한 것보다는 둔화된 수치다.
여러 반도체 분석가들이 메모리 수요가 과거에 비해 사이클 의존성이 줄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DA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분석가는 “과거 메모리는 범용 제품을 단기계약으로 판매했지만, 지금은 HBM을 고객과 공동 설계하고 장기계약으로 공급한다”고 지적했다. AI수요 증가만이 아니라 훨씬 구체적인 산업구조 변화의 근거라는 것이다. 그는 이에 따라 7일 마이크론에 대해 내년도 예상 이익의 19배라는 멀티플을 적정주가로 제시하기도 했다.
레이먼드 제임스의 멜리사 페어뱅크스 분석가도 이달 초 마이크론이 고객 주문만큼 메모리칩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으며 “메모리 공급이 언제 수요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조차 추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메모리가 수십년간 반복해온 호황과 불황 사이클 패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AI구동을 위한 자체 칩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늘어나는 것도 메모리 산업에는 호재다. 엔비디아와 AMD 등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AI 가속기를 만드는 업체뿐 아니라 구글(TPU), 아마존(트레이니엄칩), 오픈AI나 앤스로픽 같은 AI 기업들가지, 자체적으로 AI 칩을 만들려는 기술 기업들은 AI 구동에 필요한 메모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메타가 출시해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뮤즈와 같은 AI에이전트의 인기는 메모리 수요를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AI에이전트는 챗봇형 AI에 비해 대화로부터 실행 확인 등 여러 과정을 거치며 더 긴 기억이 필요한 구조라 더 많은 메모리가 중앙처리장치(CPU)에 부착되는 구조다.
AMD의 리사 수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주 서울 방문에서 현재 시장 동향을 강조하며 삼성 및 SK 하이닉스와의 장기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 수 CEO는 AMD가 HBM4를 탑재한 차세대 인스팅트 MI455X 및 헬리오스 시스템의 출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고객들이 주문을 앞당기고 있다는 이유로 3분기 DRAM 가격 전망치를 기존 5~10%에서 10~20%로 상향 조정했다.
카운터포인트의 리서치 부사장인 닐 샤는 "현재 삼성은 상당히 저평가되어 있다”며 아직 삼성 HBM의 효과가 완전히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은 HBM과 관련하여 내년에 보여줄 것이 많다”고 밝혔다.
씨티그룹의 애널리스트 피터 리와 제이든 오도 이 같은 낙관적인 전망에 동의했다. 이들은 “12단 HBM4 가격이 내년에 100%에서 150%까지 급등해 삼성의 평균 판매 가격과 이익률을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씨티그룹은 원화 강세로 인해 삼성의 연간 이익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다만 수년내로 현재의 설비 증설과 중국산 메모리칩 공급 등 변수에 따른 사이클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모닝스타의 분석가들은 7월 보고서에서 AI 수요와 장기계약이 2028년까지 실적을 뒷받침할 수 있지만, 중국 메모리 업체를 비롯, 현재의 설비 증설로 신규 공급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2029년에서 2030년에는 다시 하강 사이클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기술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주주환원이나 지배구조 관련 저평가 등의 요소도 무시할 수는 없다.
시장의 신중한 태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7월 이후 2분기 연속 사상 최고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6월 최고치 대비 약 25%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