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대학가가 떠들썩한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축제 기간인데요. 대학 축제는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젊음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문화입니다. 올해 역시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며 대학가가 열정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지고 있습니다.
축제에 빠질 수 없는 건 단연 음악입니다. 아이돌부터 밴드까지 초대 가수는 물론이고, 재학생 밴드, 학교 응원단 등의 다양한 무대가 청춘을 대변합니다. 그중에서도 38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곡이 있는데요. 바로 고(故) 신해철의 '그대에게'입니다.
이 곡은 1988년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세상에 공개된 곡입니다. 당시 신해철은 무한궤도라는 이름의 밴드로 출전해 '그대에게'를 불렀고, 대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마왕' 신해철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대에게'는 신해철이 단독 작사·작곡·편곡한 곡이었습니다. 사실 이 곡은 철저하게 가요계 수상을 목표로 설계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신해철은 '대학가요제'에 앞서 '강변가요제'에 밴드 아기천사 객원 보컬로 출전했었으나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당시 대상은 이상은의 '담다디'가 차지했습니다.
이후 신해철은 오롯이 가요계 특성에 맞춘 곡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목표는 '한 방에, 시작부터 튀어서 관객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서강대학교 철학과 2학년 학생이었던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문구점에서 산 멜로디언으로 '그대에게'를 작곡했습니다. 가족의 반대를 피해 선택한 작업 방식이었죠.
이 전략은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가왕' 조용필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습니다. 시작부터 화려한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귀에 강렬하게 꽂혔죠. 포크, 솔로 가수 위주였던 당시 가요제 흐름과는 완전히 반대로 간 전략이었습니다. 여타 곡에 비해 전주도 상당히 길었습니다. 약 45초간 짜릿한 사운드가 빼곡하게 펼쳐졌고, 그 위에는 "워~ 워어어~"라고 흥을 북돋는 신해철의 목소리만이 있었습니다.
조용필은 긴 시간 심사에 지쳐 있다가, '그대에게' 전주를 듣는 순간 "대상감"이라고 직감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파격적인 접근이었습니다. 또 조용필은 1979년 밴드 위대한 탄생을 만들어 활동했죠. 밴드 음악에 친숙한 가수였고, 현재까지도 '바운스' '그래도 돼' 등의 곡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대표적인 '열린 마인드'의 아티스트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이 신해철의 의도와 잘 맞닿았습니다.
신해철은 무한궤도 해체 후 솔로로 데뷔해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히트시켰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밴드를 결성했죠. 이름은 넥스트(N.EX.T). 'New EXperiment Team'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실험을 하는 팀이었습니다. 넥스트는 하드록과 헤비메탈은 물론이고, 프로그레시브 록, 국악 등 다양한 장르적 시도에 나섰습니다. 록 오페라인 '라젠카(Lazenca)'가 큰 사랑을 받기도 했죠.
이 밖에도 '도시인', '인형의 기사', '날아라 병아리',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 수많은 넥스트의 곡이 음악 팬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어린 시절 병아리 얄리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삶의 순수함과 상실감을 노래한 곡 '날아라 병아리'는 많은 이들의 '인생곡'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조용필은 신해철의 장례식장에서 "후배지만 존경했다"며 고인의 음악적 역량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이 '그대에게'를 부르며 힘차게 팔을 가로젓는 모습은 음악의 힘을 증명합니다. 신해철은 떠났어도, 그의 음악은 수십 년째 음악 팬들의 마음에 남았습니다.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 신해철의 묘비에 적힌 문구가 대학축제 기간 더욱 와닿는 이유입니다.
음악·공연·영상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즐거움을 주는 시대. 숨은 이야기를 알면 더 보이고, 더 들립니다. 당신의 취향을 찾을 때까지 같이 깊게 파고드는 '디깅메이트'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