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명과 건설사 브랜드에 외래어 별칭까지 붙이던 주거단지 이름에 우리말을 활용한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윤슬'처럼 짧은 단어로 단지의 특징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한글날을 앞두고 누구나 쉽게 부르고 이해할 수 있는 이름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공급된 '목동윤슬자이'가 대표적입니다. 아파트가 아니라 주거용 오피스텔입니다. 지역명 '목동'과 브랜드 '자이' 사이에 순우리말 '윤슬'을 넣었습니다. '포레', '리버뷰', '센트럴' 같은 외래어 별칭 대신 우리말을 선택한 것입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합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1999년 출판된 표준국어대사전 초판부터 등재된 단어입니다. 최근 만들어진 신조어가 아니라 사전에 실린 우리말입니다.
이 이름은 단지 외관에 적용할 설치미술에서 착안했습니다. 미국 출신 작가 네드 칸의 작품을 적용할 계획입니다. 알루미늄 패널이 바람에 따라 움직이면서 물결치는 듯한 모습을 표현합니다. 우리말의 의미와 건축물의 특징을 연결한 작명입니다.
단지명 전체가 순우리말인 것은 아닙니다. 기존 건설사 브랜드는 유지했습니다. 브랜드 앞뒤에 붙이는 별칭을 우리말로 바꾼 데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말을 활용하면서도 지역과 브랜드를 함께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아파트에서도 우리말 이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의 '경희궁의 아침', 대전의 '맑은아침 아파트', 경기 남양주의 '별가람마을' 등이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2024년 우리말 아파트 이름 공모전에서 이 3개 단지 이름을 추천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경희궁의 아침'은 단지가 있는 공간의 특성을 긍정적인 의미의 우리말로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역의 특징을 알리는 데 반드시 외국어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례입니다.
공모전은 기존 단지 이름을 추천하는 부문과 새로운 이름을 제안하는 부문으로 나눠 열렸습니다. 새 이름으로는 '숲을품은', '해온마루', '물빛고운'이 선정됐습니다. '물빛고운'은 실제 아파트 이름에 쓰이는 '아크로리버'를 우리말로 바꿔 제안한 사례입니다. 공모전 제안작으로, 실제 단지가 이름을 바꾼 것은 아닙니다.
긴 단지명을 줄이자는 문제의식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2024년 '새로 쓰는 공동주택 이름 길라잡이'를 발간했습니다. 어려운 외국어 사용을 자제하고 고유지명을 활용하자는 내용입니다. 불필요한 별칭을 줄이고 적정한 글자 수를 지키라는 원칙도 담았습니다.
시는 지역명과 건설사명, 브랜드에 외래어 별칭까지 더해지는 작명 방식을 지적했습니다. '센트럴', '팰리스', '퍼스트', '엘리움' 등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단지 특징을 강조하려고 붙인 별칭 때문에 이름이 길어지고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는 설명입니다.
이름의 길이가 늘어난 흐름도 제시했습니다. 서울시가 인용한 부동산인포 자료에서 아파트 이름은 1990년대 평균 4.2글자였습니다. 2000년대에는 6.1자로 늘었습니다. 2019년에는 9.84자에 달했습니다. 오래된 조사인 만큼 현재 평균을 뜻하는 수치는 아닙니다.
서울시는 길고 어려운 이름이 늘어나면 오히려 단지를 차별화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여러 단지에서 비슷한 별칭을 활용하면 이름을 길게 붙이는 것만으로 특징이 선명해지지는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길라잡이는 이름을 강제로 바꾸도록 하는 규정은 아닙니다. 공동주택 명칭을 정하거나 변경할 때 참고하도록 마련한 권고입니다. 주민이 원하는 이름을 정하는 절차도 원칙에 포함했습니다. 작명의 자율성과 일상에서 사용하는 이름의 공공성을 함께 고려한 것입니다.
한글로 적힌 이름과 우리말 이름도 구분해야 합니다. 외국어를 한글로 옮겨 적었다고 순우리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말을 포함한 단지명이라고 모두 짧고 이해하기 쉬운 것도 아닙니다. 서울시 권고가 외국어 사용뿐 아니라 별칭과 글자 수까지 함께 다룬 이유입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