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릴리와의 대형 기술수출 기대감으로 주목받아 온 펩트론이 후속 상업화 계약을 발표하지 못한 채 플랫폼 기술평가를 마쳤다. 시장은 이를 사실상의 본계약 불발로 해석해 펩트론 주가는 장 마감을 앞두고 애프터마켓에서 28% 넘게 급락했다.
펩트론은 7일 오후 공지를 통해 “일라이릴리와 진행해 온 스마트데포(SmartDepot) 플랫폼 기술평가 기간이 이날부로 종료됐다”고 밝혔다. 회사는 “기술평가 기간 종료 시점에 후속 상업화 계약 체결이라는 결과를 함께 안내하지 못하게 된 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펩트론은 "기술평가 종료가 향후 사업화 협력 가능성의 종료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후속 협력의 구체적 방식과 시점에 대해서는 현재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약 2년간 이어진 공동연구가 계약상 종료됐지만, 시장이 기다려온 글로벌 제약사와의 상업화 계약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실망 매물이 쏟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2년이나 끈 릴리와의 협업펩트론과 릴리의 협력은 2024년 10월 7일 시작됐다. 양사는 릴리가 보유한 펩타이드 의약품에 펩트론의 장기지속형 약물전달 플랫폼인 스마트데포를 적용하는 비독점 기술평가 계약을 체결했다. 초기에는 약 14개월가량의 평가가 예상됐으나, 2025년 12월 펩트론이 정정공시를 내면서 최대 평가기간은 2026년 10월 7일까지로 연장됐다.
연장 이후 시장에서는 릴리가 평가를 마친 뒤 라이선스 계약이나 공동개발 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펩트론은 지난달 "10월 7일이 후속 계약의 법정 시한은 아니다"라는 설명을 내놨고, 계약 만료일인 이날 상업화 계약 없이 기술평가 종료 사실을 공지했다. 펩트론은 "공동연구 과정에서 최초 계획보다 확대된 범위의 연구와 추가 기술평가가 이뤄졌으며 약정된 대가도 모두 수령했다"고 설명했지만, 릴리의 최종 사업화 결정과 후속 계약 여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스마트데포는 생분해성 고분자 기반 미립구를 이용해 체내 약물 방출 속도를 조절하는 펩트론의 약물전달시스템(DDS) 플랫폼이다. 매일 또는 매주 맞아야 하는 펩타이드 치료제를 월 1회 등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만·당뇨 등 만성질환 치료제 시장의 관심을 받아왔다. 다만 릴리와의 기술평가 대상 물질은 비밀유지 의무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고, 시장에서 기대했던 특정 비만치료제 성분이 포함됐는지도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협력 가능성’과 ‘계약 성사’는 다르다
펩트론은 릴리와의 협력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술평가가 끝난 이후에도 상용화 가능성, 대량생산성, 시장성, 지식재산권 등을 검토한 뒤 사업화 협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후속 협의의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릴리가 스마트데포를 채택해 구속력 있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릴리가 다른 장기지속형 약물전달 플랫폼 기업들과도 협력 범위를 넓혀 왔다는 점은 펩트론 입장에서 경쟁 환경과 불확실성을 키우는 대목이다.
펩트론은 스마트데포 상업화를 염두에 두고 생산능력 확대에도 나섰다. 약 890억원을 투자하는 오송 제2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투자 종료 예정일은 2028년 2월 15일이다. 시장은 그동안 이 투자를 글로벌 제약사와의 기술이전 및 향후 상업생산 수요에 대비한 선제적 투자로 해석해왔지만, 릴리와의 본계약이 최종적으로 성사되지 않을 경우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회수 전망과 가동률도 검증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바이오 투자심리 다시 흔들리나업계선 이번 펩트론의 주가 급락을 두고 개별 기업의 기술평가 종료를 넘어 국내 바이오 섹터 전반의 투자심리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최근 국내 바이오주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기술수출, 공동연구, 임상 데이터 발표 등 미래 성과에 대한 기대를 기반으로 큰 폭의 변동성을 보여 왔다. 특히 대형 제약사와의 협력 소식은 기업가치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촉매가 되는 반면, 본계약 지연이나 계약 불발은 기대감이 과도하게 반영된 종목을 중심으로 급격한 주가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대형주의 돌발 악재가 겹치면서 시장에서는 바이오 섹터 전반의 위험 회피 심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며 "향후 바이오 투자심리는 단순한 기술평가·협력 발표보다 실제 기술이전 계약의 조건, 계약금과 마일스톤, 임상 진전, 상업화 일정 등 실질 성과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