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도서전 기간이면 다른 손님을 거의 받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일반 단체 손님도 받을 만큼 객실에 여유가 있어요."(독일 프랑크푸르트 호텔 관계자)
세계 최대 도서전도 출판 불황의 그늘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제78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7일(현지시간) 막을 올렸다. 출판사와 에이전시들이 과거보다 참가 규모를 줄이면서 행사 기간이면 일찌감치 방이 동나던 이 지역 호텔가의 풍경도 달라졌다.
이런 위기감은 도서전이 열린 메세 안에서도 고스란히 감지됐다. 전 세계 출판인이 모인 개막 현장에서 화두는 역시 생성형 인공지능(AI)이었다. 책을 사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AI는 인간이 만든 책을 학습하고, 이제는 읽고 생각하는 일까지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우려였다.
제바스티안 구골츠 독일출판서점협회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AI를 "우리의 책과 사고력을 동시에 노리는 이중의 약탈"이라고 직격했다. 그는 "한 세대 전체가 스스로 질문하고 의심하며 답을 찾아가는 대신, 기성품처럼 이미 만들어진 답을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고 소비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며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퓰리처상 수상 역사학자인 질 르포어 하버드대 교수의 경고도 이어졌다. 그는 인류가 "역사의 칼날 위에 서 있다"며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을 기계에 넘겨줄지 지금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는 예술과 글쓰기를 넘어 사상의 자유와 민주사회까지 위협한다"며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책은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쏟아진 우려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독서 강국인 독일에서도 지난해 출판시장 매출은 2.7% 감소했고 책 구매자도 약 5% 줄었다. 특히 10~15세의 도서 구매는 30.6% 급감했다. 최근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는 독일 15세 청소년 3명 중 1명이 기초 독해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에서도 문제로 떠오른 '문해력 위기'가 세계적인 현상인 셈이다.
출판계는 정치권에도 행동을 요구했다. 이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유럽의회, 독일 연방정부를 향한 '프랑크푸르트 호소문'이 발표됐다. 출판사 120곳이 AI 학습에 쓰인 저작물 공개와 공정한 라이선스 모델 구축, 실효성 있는 저작권 보호를 요구했다.
하지만 전시장 한쪽에서는 AI를 출판의 도구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도 분주했다. 번역과 학술출판, 오디오 제작 등 AI 활용을 다루는 세션이 이어졌고 스포티파이와 오더블 같은 글로벌 플랫폼도 모습을 드러냈다. AI를 경계하면서 동시에 AI 시대의 출판을 준비하는 것. 올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보여주는 역설적인 풍경이다.
한국 작가들도 프랑크푸르트를 찾았다. 소설가 김초엽·천선란은 정보라의 사회로 한국 SF가 세계 독자와 만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진영·예소연·성해나 작가도 ‘지금 가장 새로운 한국문학의 목소리’를 주제로 현지 독자들과 만났다.
프랑크푸르트=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