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칵테일 실화야?"…외국인 줄 서는 청담동 '이상한 바' [씬메이커]

입력 2026-10-13 22:00
수정 2026-10-13 23:00

앨리스 청담은 올해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서 13위에 오르며 올해까지 11년 연속 5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바의 위상을 해외에 알린 '국가대표'라 할 수 있다. 앨리스 청담을 이끄는 김용주 대표(사진)는 바텐더의 사회적 기반을 다지고, 바의 문턱을 낮춰 누구나 일상에서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고민해왔다.

김 대표의 시작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호텔관광경영을 전공한 뒤 라이브 카페 아르바이트를 거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의 즐거움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집안 사정이 기울면서 도전했던 중국집 장사가 실패, 갚아야 할 빚 때문에 집조차 없이 밤에는 바에서 일하고 낮엔 학교를 다니며 직원 숙소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 고단한 20대를 보냈다.

이후 하얏트와 메리어트 등 특급 호텔에서 경력을 쌓으며 바텐더로 자리잡았지만 당시 계약직 중심의 환경 속에서 정규직 전환의 한계를 느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수록 보상받는' 바텐더라는 업의 본질에 매료됐고, 이러한 경험들은 자연스럽게 독립적 매장 운영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중식당 주방의 경험에서 찾은 효율적 운영 시스템
2015년 문을 연 앨리스 청담은 당시 싱글몰트 위스키 중심의 무겁고 럭셔리했던 바 문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프로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지향했다. 오픈 초기 6개월 동안은 손님이 없어 고전했고 코로나19 시기에는 영업 유지를 위한 현실적 고비를 넘어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바 대회에 출전해 굵직한 상을 거머쥐며 실력을 입증해왔다. 대회에 선보인 화려한 칵테일을 실제 매장을 찾는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선보이고 싶었다. 복잡한 테크닉과 화려한 가니시가 들어가는 경연용 칵테일은 바쁜 실무 속 현장에서 그대로 재현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앞서 실패했던 중식당 운영 경험이 오히려 '힌트'가 됐다.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면판과 조리장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중식당의 분업 시스템을 바 운영에 이식한 것이다. 잔 준비, 얼음 채우기, 셰이킹, 가니시와 마무리 플레이팅까지 파트별로 역할을 나누어 유기적으로 맞물리도록 설계했다.

김 대표는 "그 결과 앨리스 청담은 손님이 몰리는 피크 타임에도 맥시멀리즘의 화려한 감성을 잃지 않으면서 일관된 품질의 음료를 안정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철저한 매뉴얼과 환대가 완성하는 공간
앨리스 청담은 신입 바텐더가 들어오면 자체 교재와 세분화된 매뉴얼로 교육한다. '환대'와 '서비스 정신'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 만큼, 손님이 입장하는 순간부터 자리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고 나가는 순간까지의 시나리오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단순히 맛있는 술을 건네는 것을 넘어, 공간이 주는 몰입감과 세심한 접객 태도가 어우러져야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운 경험'이 완성된다는 철학 때문이다.

이제 앨리스 청담은 주말이면 방문객의 70%가 외국인 관광객일 정도로 글로벌 미식가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김 대표가 강조하는 앨리스의 본질은 관광 명소를 넘어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을 기록하는 장소, 예컨대 10년 전 소개팅했던 연인이 부부가 되어 다시 찾아와 같은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편안한 일상의 기록소가 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공간의 가치'다.장류와 쌀의 재해석…'고추장독'에 담긴 한국적 미식
앨리스 청담은 기존의 공식을 과감하게 비트는 메뉴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2년에 한 번씩 전면 개편되는 메뉴판에는 어김없이 한국적 식재료가 녹아드는데, 올해는 바로 고추장독이다.

시골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칵테일 '오키도키'는 소주를 베이스로 쌀 리조또의 크리미한 질감을 더하고 쌈장과 된장, 설렁탕을 젤리화한 요소를 조합했다. 텁텁함이 남기 쉬운 고추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장인과 협업해 딸기 성분을 더한 스트로베리 고추장을 개발해 칵테일 완성도를 높였다.

외국인 관광객과 로컬 미식가들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이 메뉴는, 한국적 식재료가 가장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칵테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김 대표는 성수를 거점으로 '바이오 랩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발효(누룩, 식초, 젖산 발효 등)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레시피화하는 공간으로, 국내외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더 풍부한 연구개발(R&D)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무대가 될 예정이다.누구나 자신만의 '단골 바'를 가지는 날까지
김 대표는 럭셔리 바를 이끌며 실험과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은 언제나 산업 전반의 저변 확대로 향하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가려진 어려움을 개선하고 바텐더가 요리사처럼 온전한 전문 직업군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는 그는 후배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한국 바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고 이를 직접 글로 풀어내 소셜미디어(SNS)에 카드뉴스로 대중과 소통한다.

"한국의 바가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 오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그럴수록 대다수의 작은 바들이 지닌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편안하게 가서 바텐더와 이야기하고, 합리적 가격에 하루를 마무리하며 쉴 수 있는 일상의 공간 말입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