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5000원을 내면 세계 현대미술 총아들의 그림과 만날 수 있다. 전시에 나온 작품가액은 5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서울 대치동 글로벌세아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현대회화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 얘기다.
전시장에는 마르크 샤갈, 윌렘 드 쿠닝, 데이비드 호크니, 쿠사마 야요이 등 거장들을 비롯해 조지 콘도, 아드리안 게니, 니콜라스 파티 등 인기 작가의 대형 작품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해외 현대미술 주요 작가들의 대형 작품을 이처럼 다채롭게 보여주는 전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물다. 전시작 중 상당수가 최근 5년 새 수십억원대에 거래된 작품이고, 절반 이상은 글로벌세아그룹 측 소장품이다.
이번 전시 구성은 국립현대미술관 출신의 박미화 독립 큐레이터가 맡았다. 박 큐레이터는 시대 순으로 세 방에 나눠 작품을 걸었다. 첫 방 ‘꿈의 산책’에서는 꿈과 무의식을 그린 초현실주의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마르크 샤갈(1887~1985)의 대형 작품 ‘방스 주변’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지난해 5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597만9000달러(약 81억원)에 낙찰된 기록이 있다.
르네 마그리트와 함께 벨기에 초현실주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폴 델보(1897~1994)의 작품도 세 점 있다. 이 작품들은 지난해 3월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 나란히 나와 총 1291만파운드(약 230억원)에 팔렸다.
두 번째 방에는 추상화 작품들이 걸렸다. 추상표현주의 거장 윌렘 드 쿠닝(1904~1997)의 ‘무제 XIX’(1984)는 말년에 그린 작품이다. 높이 2m가 넘는 흰 화면에 빨강과 파랑 선 몇 줄이 리본처럼 굽이친다. 지난 8월 97세로 세상을 떠난 ‘물방울 여왕’ 쿠사마 야요이(1929~2026)의 추상화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은색 안료로 그린 ‘실버 인피니티 네트’, ‘호박’ 연작 두 점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마지막 방에는 풍경 위주의 구상화가 걸렸다. 지난 6월 89세로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호크니(1937~2026)의 그림은 고향 영국 요크셔의 시골길 풍경이다. 2024년 10월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약 460만파운드(약 82억원)에 판매된 이력이 있는 작품이다. 이탈리아 화가 살보(1947~2015)의 대형 풍경화 두 점,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혀 온 스위스 화가 니콜라스 파티(46)의 ‘풍경’(2016)도 나란히 걸렸다.
미국 화가 조지 콘도(69)는 옛 거장의 화풍에 팝아트를 섞은 미술시장의 스타다. 이번에 나온 ‘경영진들과 그들의 아내들’(2011)은 2024년 11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392만2000달러(약 53억원)에 팔렸던 작품이다. 루마니아 화가 아드리안 게니(49)는 40대에 작품 최고 경매가가 10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큰 사랑을 받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는 높이 2.3m의 그림 ‘담배를 피우는 자화상’(2015)이 나와 있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한 번쯤 가볼 만한 전시다. 덜 난해한 대형 구상회화 위주로 작품이 나와 있고 책자 설명도 충실하게 돼 있어서다. 전시는 내년 1월 9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