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할 때 쉰내나면 난감"…요즘 2030 '향따' 열풍 뭐길래 [김기자의 알고리즘]

입력 2026-10-04 16:03
수정 2026-10-04 17:14

<i>"러닝하다가 어떤 분이 옆을 지나갔는데 좋은 향이 싹 나는 거예요. 무슨 제품을 쓰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i>

러닝을 시작한 지 6개월 된 30대 남성 A씨가 요즘 새로 챙기는 건 운동화가 아니라 섬유유연제다. 운동복에 밴 땀 냄새가 신경 쓰이던 차에 다른 러너에게서 맡은 향이 계기가 됐다. A씨는 "좋은 향이 사람의 첫인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운동복을 꺼내 입을 때부터 향이 좋으면 운동하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빨래 냄새를 따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유튜브의 '섬유유연제 추천' 검색 관심도는 그 이전 3개월보다 60% 높았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40% 증가했다. 옷감을 얼마나 부드럽게 만드는지를 넘어 어떤 향이 남는지까지 제품 선택의 기준이 된 것이다. ◇ "무슨 섬유유연제 써요?"…향수 넘어 빨래까지 '향따'
좋은 향의 출처를 찾아 같은 제품을 쓰는 이른바 '향따(향기 따기)'도 향수에 그치지 않고 섬유유연제로 번지고 있다.

일본 패브릭 프래그런스 브랜드 '란도린'이 대표적이다. 방탄소년단(BTS) 정국이 사용하는 섬유탈취제로 알려지면서 클래식 플로럴 향이 국내에서 입소문을 탔다. 같은 향의 섬유유연제까지 함께 알려지면서 일본 여행에서 사 오거나 해외 직구로 구하는 소비자도 생겼다.

직구로 찾던 수요가 이어지자 란도린은 올해 한국에 정식 진출해 올리브영과 주요 이커머스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됐다.

걸그룹 AOA 출신 가수 초아는 한 음식점에서 손수건 향이 마음에 들어 직원에게 어떤 섬유유연제를 쓰는지 직접 물어봤다고 밝혔다. 초아는 이후 이 제품을 계속 쓰고 있다고 했다. 그룹 ITZY 채령 역시 좋은 향이 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용하는 세탁 제품에 관심이 쏠렸다. 온라인에서는 채령이 쓰는 제품을 묻고 공유하는 글도 꾸준히 올라온다. ◇ "구김 없어도 쉰내 나면 깔끔해 보이지 않아"향이 제품 선택의 기준이 된 데는 '깨끗하다'고 느끼는 기준이 달라진 영향도 있다.

30대 직장인 B씨는 "아무리 와이셔츠가 구김 없이 정갈하고 깨끗해 보여도 쉰내나 꿉꿉한 냄새가 나면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반대로 은은하게 빨래 향이 나면 그제야 '잘 세탁된 옷'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해외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민텔이 지난해 2월 내놓은 태국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는 빨래 향을 자신의 향수처럼 활용한다고 답했다. 섬유유연제 향만으로 일상에서 쓰는 향이 충분하다는 응답도 23%였다. 민텔은 태국 소비자들이 좋은 냄새를 청결함과 연결해 인식한다고 분석했다. ◇ 한 통만 쓰는 게 아니다…빨래도 '오늘의 향' 향수는 몸 일부에 뿌리지만 섬유유연제 향은 셔츠와 수건, 침구까지 남는다.

향이 머무는 범위가 넓다 보니 한 가지 제품에 정착하지 않는 소비도 나타난다. 여러 향을 갖춰두고 계절이나 옷, 기분에 따라 바꾸거나 섬유유연제와 같은 계열의 향으로 세제·향기부스터·섬유탈취제까지 맞추는 식이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향은 직구로 찾는다.

1인 가구 증가도 이 같은 소비와 맞닿아 있다. 여러 가족 구성원과 빨래를 함께 하면 누구나 무난하게 쓸 수 있는 향을 골라야 하지만 혼자 살면 옷과 수건, 침구까지 자기 취향대로 향을 고르기 쉽다. ◇ 향 지속 14일에서 30일로제조사들도 향을 앞세우고 있다. 유니레버코리아의 섬유케어 브랜드 스너글은 최근 '스파클 플러스 섬유유연제'를 리뉴얼하면서 향 지속 기간을 기존 14일에서 최대 30일로 늘렸다. 옷을 입고 움직이거나 섬유가 마찰할 때 향이 다시 퍼지도록 '포근향 부스트 캡슐'도 넣었다.

스너글은 땀과 음식물, 담배 냄새 등 생활 악취를 99% 제어하는 탈취 기술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옷감을 부드럽게 하는 기능에 더해 냄새를 잡고 향을 오래 남기는 성능이 경쟁 요소가 됐다.

업계에서는 향을 중심으로 세탁용품 시장의 세분화가 더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세탁 성능만으로 차이를 내기 어려워진 만큼 향의 종류와 지속력, 탈취 기능을 앞세운 제품 경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희선 한경닷컴 기자 gimme_s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