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진되면 '돈방석' 앉는 줄 알았는데…5만석 공연장 '놀라운 현실'

입력 2026-10-02 10:54
수정 2026-10-02 11:17

대형 공연 시장이 3년 만에 세 배 가까이 커졌어도, 5만 석 공연장은 입지와 재원 구조, 운영 모델이 함께 받쳐줘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공공이 땅을 내놓거나 건축비 일부를 맡으면 민간의 초기 부담은 가벼워지지만 투자금 회수는 여전히 쉽지 않고, 공연 일정과 부대사업 수입을 짓기 전부터 설계하고 검증해야 사업이 성립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여행·관광 산업 전문 연구기관 야놀자리서치는 5만 석 대형 공연장 건립의 재무적 타당성: 사업 성립 조건과 정책 과제 보고서를 통해 서울에 5만 석 공연장을 짓는 기준모형을 두고 수요·수익 시나리오 12개를 세운 뒤, 투자 방식별 순현재가치(NPV)와 내부수익률(IRR) 분석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대형 공연 시장은 급성장, 실내 시설은 제자리
국내 1만 석 이상 시설의 공연 티켓 판매액은 2022년 1802억원에서 2025년 5320억원으로 늘었다. 전체 공연 티켓 판매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7.5%에서 30.7%로 높아졌다. 2025년 이들 공연의 티켓 판매 수 중 대중음악 비중은 99.5%였다.

다만 수용 시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국내 실내 공연시설은 6곳뿐이다. 모두 2만 석에 못 미친다. 2025년 올림픽공원 KSPO돔은 115일간 공연을 열어 추정 가동률 78.1%를 기록했고,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60일간 공연을 열었다. 고척스카이돔과 잠실실내체육관은 스포츠 일정과 겹치고, 2만 석을 넘는 공연은 야외 종합운동장에 의존하는 구조다.

야놀자리서치는 5만 석을 확정된 정답으로 보기보다 글로벌 투어 경제성과 국내 실수요를 함께 따져보는 기준 규모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운영 흑자는 상한 조건에서만 가능"

야놀자리서치는 서울 기준모형에서 건축공사, 무대기술 인프라, 주차장, 설계·감리 등 건축 관련 비용을 약 6010억원으로 추정했다. 필요한 부지는 약 9만5000㎡로 토지매입비는 약 1조 2072억원이다. 민간이 땅을 직접 사면 초기 투자비는 약 1조 9890억원이 된다.

개장 후 연간 운영비는 감가상각비를 포함해 약 407억원(현금성 운영비 약 225억원)이다. 공연이 없어도 수선유지비와 인건비 등이 상당 부분 나가기 때문에, 대관료와 관람권 수수료, 명명권·F&B·MD·광고 같은 부대사업 수입이 수익을 좌우한다.

공연 유치 규모 4단계와 수익구조 3단계를 엮은 12개 시나리오 가운데 흑자가 가능한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연 36회 공연이 매진되고, 평균 티켓 가격 17만6000원, 관람권 수수료율 10%, 대관 매출 대비 부대사업 수입률 50%가 모두 실현될 때다. 이 경우 연간 총수입은 약 537억원, 영업이익은 약 130억원으로 추정됐다. 하한 조건에서는 영업손실이 약 127억원이다. 공연 횟수, 가격, 부대사업 수입이 동시에 높게 나와야 흑자가 난다는 뜻이다.
공공 부지에 건축비 60% 지원해도 확신 어려워

운영 흑자와 투자 회수는 별개 문제라고 짚었다. 보고서는 건설 3년과 운영 30년, 총 33년의 현금흐름으로 IRR을 계산했고 할인율은 연 7~10%를 적용했다. 아래 IRR은 모두 상한 운영 조건을 전제한 수치다.

민간이 토지를 사들이는 방식은 모든 시나리오에서 NPV가 마이너스였고, 상한 조건 IRR은 마이너스 4.24%였다. 공공이 부지만 제공하면 1.85%, 건축비 20%를 더 지원하면 3.42%, 40%를 지원하면 5.68%였다. 건축비 60%를 지원해 민간 초기 투자액을 약 2644억원으로 낮추면 IRR은 9.47%까지 올랐다. 다만 할인율 10%에서는 NPV가 여전히 마이너스여서, 보고서는 사업성이 담보된 수준이 아니라 타당성 여부가 갈리는 경계선으로 평가했다.

낙관적 가정이 조금만 흔들려도 결과가 달라졌다. 같은 지원 조건에서 수요실현계수가 70%로 낮아지면 IRR은 3.03%, 부대사업 수입률이 30%에 그치면 6.94%, 현금성 운영비가 10% 늘면 8.71%로 떨어졌다. 연구진은 60%라는 지원율 자체가 정책 권고는 아니며, 초기 부담 경감과 실제 운영 성과가 함께 확보돼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홍석원 야놀자리서치 수석연구원은 "개장 전 국내외 공연기획사와의 장기 파트너십으로 일정을 확보하고, 명명권·F&B·MD 등 부대수익을 계약적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며 "개장 초기 램프업 손실 분담까지 함께 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야놀자리서치는 사업이 성립하려면 민관의 합리적 비용 분담, 장기 파트너십을 통한 공연 일정 선확보, 개장 전 복합 수익원 설계(명명권·F&B·MD·관광 연계), 수요·교통·숙박·상권·소음 조건을 충족하는 입지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수요가 검증된 지역부터 검토하되 비수도권은 교통·관광·숙박·콘텐츠 전략을 결합한 별도 타당성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봤다. 수요 검증, 교통영향평가, 민간 운영계획, 부대수익 확보 계획을 단계별로 통과한 경우에만 추진하는 '조건부 의사결정'도 제안했다.

장수청 야놀자리서치 원장은 "대형 공연장은 건물 하나를 짓는 사업이 아니라 공연 콘텐츠와 교통·관광·상업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플랫폼 사업"이라며 "정부와 지자체는 몇 석을 지을 것인가보다 어떤 공연 수요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고, 누가 어떤 책임으로 지속적으로 운영할 것인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규완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는 "대형 공연장은 국내외 팬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앵커 시설"이라며 "개장 전부터 공연기획사와 장기 파트너십으로 일정을 확보하고, 공항 이동·숙박·심야 교통을 연계한 외국인 관람객 서비스를 설계해야 공연 관람을 체류형 관광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했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