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기업 출신 A씨 등은 중국 정부의 투자를 받아 설립한 반도체 회사에서 원 소속 기업의 700여 개 공정기술을 활용해 20나노급 D램을 생산했다. 국내 자동차 업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B씨는 수소연료전지 관련 국가핵심기술 자료를 반환하거나 삭제하지 않은 채 해외 기업에서 부정 사용했다. 최근 5년여간 적발된 이 같은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례가 120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정보기관이 적발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은 총 120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22건, 2022년 20건, 2023년과 2024년 각각 23건, 2025년 19건이었다. 올해도 7월까지 13건이 확인됐다. 전체 120건 중 국가핵심기술 유출은 36건(30%)이었다. 국가핵심기술은 국내외 시장에서 경제적 가치와 성장 잠재력이 높고 해외 유출 시 국가안보와 국민 경제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것으로 정부가 지정한다.
분야별로는 반도체 유출이 45건으로 가장 많았다. 디스플레이 24건, 전기전자 13건을 합치면 세 분야가 전체의 68.3%를 차지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도 이 분야에 쏠렸다. 전체 36건 중 23건(63.9%)에 달했다. 유출 피해는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았다. 중소기업에서 발생한 유출은 70건(58.3%)으로 대기업(40건)보다 많았다. 나머지 10건은 대학교와 연구소 등에서 해외로 빠져나간 경우였다. 국가핵심기술 유출은 대기업이 21건으로 가장 많았고 중소기업 11건, 대학·연구소 등 4건이었다.
기술 반출에는 문서 출력, 이메일, 휴대폰 촬영 등 일상적인 수단이 동원됐다. 한 반도체 기업에서는 전직 임직원과 협력업체 임직원이 18나노 D램 공정기술을 출력물, 이메일 등을 통해 해외 기업에 유출했다. 한 디스플레이 기업 임직원들은 대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양산기술 자료를 휴대폰으로 찍어 해외 기업에 넘겼다. 2차전지 기업 임직원이 국가핵심기술 및 영업비밀 자료를 열람하고 촬영한 뒤 해외 기업으로 이직해 사용한 사례도 있었다.
산업부는 김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서에서 퇴직을 앞둔 재직자와 퇴직자를 통한 기술 유출을 주요 유형으로 꼽았다. 기술 유출 범죄 처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하는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형을 선고받은 162명 중 집행유예는 62명, 재산형은 15명이었다. 절반에 가까운 77명(47.5%)이 실형을 선고받지 않았다.
김 의원은 “인공지능(AI) 시대 첨단기술은 국가 경쟁력이자 경제안보”라며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개정 산업기술보호법 취지가 재판에 반영되도록 양형 실태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