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향수 시장에서는 사람의 체취에 가깝다고 표현되는 머스크·앰버 계열의 ‘스킨 향’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이 닿는 것조차 조심스럽던 때다. 결핍은 욕망을 키운다. 타인의 체온과 살결을 느끼기 어려워지자 역설적으로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향에 사람들이 끌렸다.
올가을 패션 시장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옷을 디자인하고 3차원(3D) 아바타가 가상으로 옷을 대신 입기까지 하는 시대다. 런웨이에는 사람 대신 휴머노이드 로봇이 서기도 한다. 패션이 그 어느 때보다 디지털 기술과 가까워진 이 시점에 디자이너들이 다시 꺼내 든 것은 가장 아날로그적인 감각인 촉감이다.
털의 결이 손끝에 느껴질 듯한 퍼, 주름과 광택이 그대로 드러나는 가죽, 굵은 실이 얽힌 니트,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프린지와 러플…. 보기만 해도 한번쯤 손을 뻗어 만져보고 싶은 옷들이다. 지난 몇 년간 패션계를 지배한 것은 로고와 장식을 덜어내고 매끈하게 정돈하는 미니멀리즘이었다. 최근에는 반대로 옷의 표면을 거칠게 만들고, 실루엣을 부풀리고, 여러 소재를 겹쳐 시각적으로도 촉감이 느껴지는 옷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마다 사람들은 손의 흔적에 주목했다. 19세기 산업혁명기 이후 기계로 만든 제품이 급격히 늘자 영국에선 수공예와 장인의 가치를 되살리려는 아츠앤드크래프츠 운동이 부상했다. 또 한번 기술혁명을 맞이한 지금 150여 년 전과 비슷한 흐름이 되풀이되고 있다. AI는 그럴듯한 이미지를 끝없이 만들어내지만 화면에서는 질감도 무게도 온도도 느낄 수 없다. 직접 만졌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촉감 자체가 옷의 경쟁력이 되는 셈이다.
옷을 입는 방식은 더 요란해졌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AI가 나의 모든 취향을 한번에 분석해 ‘정답’에 가까운 선택지를 준다. 그러자 사람들은 오히려 정해진 코디법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옷을 섞어 입기 시작했다. 클래식한 슈트에 볼캡과 스니커즈를 더하고, 풍성한 퍼에는 데님 팬츠를 매치하는 식이다. 러플 블라우스와 생지 데님, 스포티한 아우터와 레이스처럼 원래 다른 문법에 있던 옷들을 한 몸 위에 연출한다. 알고리즘이 취향을 정교하게 분류할수록 어떤 기준으로도 정의하기 어려운 조합을 찾는 모습이다. AI 시대, 인간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욕망은 그렇게 패션에 스며들고 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