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덜 내려고 만들었는데"…25년 만에 퇴장하는 '제3의 맥주'

입력 2026-10-01 13:05
수정 2026-10-01 13:17


일본 맥주업계가 25년 넘게 이어온 ‘세금 피하기’ 경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맥주와 발포주, 제3의 맥주에 각각 다르게 매겨지던 주세가 1일부터 하나로 통합되면서다. 세율 차이를 이용해 독자적인 상품군을 만들어 온 일본 특유의 맥주시장이 사실상 해체되고, 다시 일반 맥주 중심으로 재편되는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날부터 맥주류 주세를 350㎖ 기준 54.25엔으로 일원화했다. 일반 맥주는 캔당 9.1엔 감세됐고, 발포주와 제3의 맥주는 7.26엔 증세됐다. 매장에서는 일반 맥주 가격이 10엔가량 내려간 사례도 나타났다.


주세 개정 직전 주요 맥주의 평균 가격은 350㎖ 캔 기준 195엔, 제3의 맥주는 150엔으로 약 45엔 차이가 났다. 세금 변동분이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면 이 격차는 28엔 정도로 줄어든다.

이 변화의 의미는 단순한 가격 조정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 맥주시장은 지난 20여년간 세금이 제품을 만들고, 소비를 움직이는 구조였다. 맥아 함량 등에 따라 세금을 달리 매기자 맥주회사들은 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발포주와 제3의 맥주를 잇달아 개발했다.

특히 2000년대 초 등장한 제3의 맥주는 일본 맥주시장의 상징적인 ‘갈라파고스 상품’이었다. 세금을 낮추기 위해 맥아 비율을 줄이거나 다른 원료를 사용하는 식으로 제조법을 바꾼 결과물이었다.

효과는 컸다. 2020년에는 제3의 맥주가 전체 맥주류 판매량의 46%를 차지하며 일반 맥주(41%)를 넘어섰다. 소비자가 맛보다 세금 차이에서 비롯된 가격을 기준으로 상품을 선택하는 시장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세율을 조정하면서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제3의 맥주 판매 비중은 지난해 26%까지 떨어졌고, 일반 맥주는 57%로 회복했다. 대표적인 제3의 맥주인 산토리 ‘긴무기’와 기린 ‘혼기린’ 등이 일반 맥주로 전환되면 맥주 비중은 80%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통 현장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토요카도는 주류 매장에서 일반 맥주 판매 공간을 10% 늘리고 제3의 맥주 매대는 줄였다. 이온 등 주요 유통업체도 감세에 따른 가격 인하를 전면에 내세워 일반 맥주 판매 확대에 나섰다.

맥주업체들도 승부수를 던졌다. 기린맥주는 주력 브랜드 ‘이치방시보리’를 리뉴얼하고 10~12월 광고와 판촉에 역대 최대 규모의 비용을 투입한다. 아사히맥주도 ‘슈퍼드라이’ 새 광고와 시음 행사를 확대한다. 삿포로맥주는 ‘구로라벨’ 브랜드 체험 공간을 마련한다.

제3의 맥주 진영은 사실상 일반 맥주로 갈아타고 있다. 산토리는 ‘긴무기’의 맥아 배합을 바꿔 맥주로 재출시하면서도 가격은 기존 제3의 맥주 수준으로 유지한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층을 그대로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주세 통합을 일본 맥주산업이 오랜 ‘내수형 진화’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보고 있다. 일본 업체들은 그동안 자국 세제에 최적화된 발포주와 제3의 맥주 개발에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마케팅 자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 기간 글로벌 시장에서는 대형 인수합병이 이어졌고, 세계 맥주시장 상위 5개사는 모두 해외 업체가 차지했다.

세금에 맞춰 제품을 바꾸는 데 몰두하는 동안 세계시장 경쟁력 강화에는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특유의 규제가 혁신을 촉진한 측면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세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독자적 상품군을 키우며 ‘갈라파고스화’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다만 세율 통합이 맥주산업의 부활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맥주류 소비량은 전성기인 1994년과 비교해 40% 이상 감소했다. 인구 감소와 젊은층의 음주 감소, 츄하이·사와 등 다른 주류의 성장도 이어지고 있다.

20~40대에서는 츄하이·사와 선호도가 맥주와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건강을 중시해 술 자체를 덜 마시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여기에 이토요카도와 PPIH, 카인즈 등이 저가 PB 맥주를 확대하면서 가격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25년간 이어진 일본 맥주업계의 ‘세금과의 두뇌싸움’은 끝났다. 이제는 세율 차이가 아니라 맛과 브랜드, 가격 경쟁력이 승부를 가르게 됐다. 닛케이는 "세금에 맞춰 진화해 온 일본 맥주산업이 갈라파고스를 벗어나 다시 성장할 수 있을지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전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