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멜론을 샀는데 정작 먹으려니 “며칠 더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듣는다. 기다린다고 끝도 아니다. 오늘 자르면 덜 익었을까, 내일까지 두면 너무 익을까. 멜론 하나를 두고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롯데백화점 청과 바이어가 이런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선보인 것이 ‘러시멜로 멜론’이다. 별도의 후숙 없이 사 온 날 바로 잘라 먹을 수 있는 신품종이다.
이정원 롯데백화점 치프바이어가 주목한 것은 단맛만이 아니다. 맛있는 과일을 가장 맛있을 때 먹기 위해 소비자가 들여야 하는 수고였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일반적인 멜론은 구매 후 가정에서 몇 일간 후숙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러시멜로는 후숙을 기다리지 않고도 녹진한 단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차별점이다.
소비자의 반응은 매출로 나타났다. 2024년 처음 판매한 러시멜로의 지난해 롯데백화점 매출은 전년보다 65% 늘었다. 같은 기간 머스크멜론 매출 증가율인 15%를 웃돌았다. 이 바이어는 러시멜로의 재구매와 입소문을 성장 배경으로 꼽았다. 최고 당도는 20브릭스(Brix)에 이른다. 당도계 다음에는 바이어의 입새로운 품종이라는 이유만으로 백화점 매대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청과 바이어는 직접 산지를 찾아 작황과 재배 과정을 살피고 농가의 재배 방식도 확인한다. 당도계로 수치를 측정한 뒤 직접 맛을 보며 단맛과 향, 식감을 판단한다. 숫자로 표시되는 당도와 입에서 느끼는 맛을 함께 따지는 것이다.
외관도 중요한 기준이다. 껍질 상태와 과실 모양이 고른지, 크기와 색이 적절한지를 확인한다. 특히 선물용은 맛뿐 아니라 상자를 열었을 때 보이는 모습도 구매 만족도를 좌우한다.
롯데백화점은 품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크기·당도·외관 등 최상위 등급 기준을 충족하는 과실은 전체 수확량의 10~2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러시멜로는 한 줄기에 과실 하나만 남기는 ‘1주 1과’ 방식으로 재배한다. 과실에 영양분을 집중시키고, 수확한 뒤에도 외형과 당도를 따져 상품을 고른다.
바이어의 일은 맛있는 과일을 찾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에 입고되는 상품도 같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한 번 맛있었던 과일이 두 번째 구매에서도 만족스러워야 재구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농가 선정 때 재배 방식과 품질 관리 역량을 함께 확인하는 이유다.
선물 상자에서 ‘나를 위한 과일’로러시멜로는 수확 다음 날 백화점 매장에 입고된다. 롯데백화점은 첫 출하 때부터 산지 농가와 직송 체계를 구축했다. 회사에 따르면 판매가격은 전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농가는 판로를 확보하고 백화점은 신품종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구조다.
고객의 구매 목적도 달라지고 있다. 고가 과일을 명절이나 기업 선물로 구매하던 수요에 더해 직접 먹기 위해 찾는 고객이 늘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새로운 디저트와 미식 경험을 즐기는 2030세대부터 4060 주부층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변화는 바이어의 선별 기준에도 영향을 준다. 선물용이라면 큰 크기와 균일한 외관이 중요하지만, 직접 먹을 과일은 맛과 식감, 먹기 편한지가 우선이다. 러시멜로는 높은 당도에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편의를 더해 이런 수요를 겨냥했다.
비싼 과일을 고를 때도 구매 목적부터 정하는 게 좋다. 이 바이어는 자가 소비용이라면 당도와 풍미, 식감을 먼저 확인하고, 선물용이라면 크기와 과형·색택까지 함께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보기 좋은 과일과 내가 맛있게 먹을 과일의 기준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는 얘기다.
이 바이어는 “고객 트렌드를 먼저 읽고 다양하고 세분화된 고객 니즈에 맞는 새로운 과일을 제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새로운 품종과 우수한 농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