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가 인공지능(AI)·클라우드 수요 급증에 따라 유럽 데이터센터 시장의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프랑크푸르트·런던·암스테르담·파리·더블린(FLAPD)이 전력망과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글로벌 사업자들이 남유럽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이탈리아에선 오는 2028년까지 254억유로(약 40조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신규 투자계획이 잡혀 있다.
30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KOTRA)에 따르면 이탈리아 데이터센터의 정보기술(IT) 설치전력은 2021년 307MW에서 지난해 609MW로 4년 만에 약 두 배로 늘었다. 지난해에만 전년보다 19% 증가했다.
다만 실제 집행된 투자 규모는 당초 기대에 못 미쳤다. 2023∼2025년 데이터센터 건설·구축과 IT 장비에 투입된 금액은 71억유로. 당초 전망했던 105억유로와 비교하면 약 68%에 머물렀단 분석이다. 코트라는 현지에 처음 진출한 해외 사업자들이 규제·인허가 기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데다 AI 데이터센터 설계를 둘러싼 기술적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봤다.
하지만 향후 투자계획은 더 커졌다. 2026∼2028년 30개 사업자가 83개 신규 인프라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잠재 투자액은 254억유로로 2023∼2025년 전망치 대비 두 배를 웃돈다.
문제는 발표된 투자액 중 72%가 아직 이탈리아 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해외 사업자의 계획이라는 점이다. 인허가 절차가 표준화되지 않을 경우 투자 일정이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투자는 밀라노에 집중되고 있다. 롬바르디아주에서 가동 중인 데이터센터 49개 가운데 33개가 밀라노 광역권 32개 기초자치단체에 몰려 있다. 이들 시설의 공칭전력은 약 414MW다. 현재 10개 시설이 추가로 건설되고 있다. 이들 시설이 모두 완공되면 약 318MW가 더해진다. 관계기관이 검토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23개에 이른다.
유럽 전체에서도 밀라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유럽 주요 13개 데이터센터 거점엔 2023∼2025년 295억유로가 투자됐고 2028년까지 관련 투자액만 1100억유로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약 55%는 여전히 기존 FLAPD 지역에 집중될 전망이다. 다만 현재 공개된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밀라노가 유럽 신규 투자액의 최대 23%를 차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변수는 전력이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이탈리아 송전망 운영사 테르나(Terna)에 들어온 데이터센터 고압 전력망 접속 신청은 이탈리아 전체에서 68.5GW, 밀라노 권역에서만 31.1GW에 달했다. 하지만 동일 사업자가 후보 부지 여러 곳에 중복 신청하는 사례 등이 있어 이를 실제 데이터센터 수요로 보기는 어렵다.
밀라노공과대학교 데이터센터 관측소가 파악한 향후 3년간 밀라노의 실질 프로젝트 규모는 약 695MW다. 전력망 접속 신청량의 2%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가운데 약 78%가 고압 전력망 연결을 필요로 하는 만큼 전력 인프라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실제 투자 여부를 결정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이탈리아 정부도 데이터센터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인허가 제도를 손보고 있다. 지난 2월 제정된 법령을 통해 데이터센터 건설·증설·운영과 전력 연결망을 하나로 묶어 심사하는 단일 인허가 절차를 도입했다. 환경영향평가, 도시계획, 수자원 이용, 경관·문화재 허가 등을 한 과정에서 조율한다. 또 서류가 모두 갖춰진 시점부터 원칙적으로 10개월 안에 절차를 마치도록 했다.
대형 사업은 국가전략사업으로 지정해 인허가를 지원한다. 지난달 4일 기준 국가전략사업으로 지정된 데이터센터 투자 프로그램은 7건으로 투자액만 250억유로 이상이다. 이 가운데 5건, 약 215억유로가 롬바르디아에 몰렸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업체 에퀴닉스(Equinix)가 대표적인 투자 사례 중 하나다. 에퀴닉스는 올해부터 2033년까지 세티모 밀라네제와 쿠사고에 총 40억유로를 들여 데이터센터 7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일반 코로케이션 시설뿐 아니라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와 AI 워크로드를 겨냥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도 포함된다. 이탈리아 기업·메이드인이탈리아부는 건설 과정에서 약 1500명, 운영 단계에서 직·간접적으로 500명 이상 고용이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규제의 무게중심도 단순한 투자 허용에서 친환경·고효율 데이터센터 유도로 옮겨가고 있다. 롬바르디아주는 지난 6월 이탈리아 최초의 지역 단위 데이터센터 종합 규제를 마련했다. 농지를 개발하면 건설부담금을 100% 추가하고 특정 보호지역은 200%를 더 부과한다. 활용 가능한 면적의 60% 이상에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설치하거나 폐열을 2029년까지 최소 25%, 2030년부터 35% 이상 재이용하는 등의 기준도 제시했다.
현지 데이터센터 증설은 국내 업체에도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코트라는 변압기, 배전설비, 무정전전원장치(UPS),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인프라를 비롯해 고효율·액체냉각 시스템, 폐열 회수 설비, 수처리·재이용 시스템, 에너지관리 솔루션 등의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유지윤 코트라 밀라노무역관은 "이는 관련 기자재와 솔루션을 공급하는 한국 기업에도 새로운 수요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시장 진입 시에는 단순히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만 볼 것이 아니라 새롭게 도입된 지역 규제가 실제 발주 사양과 공급업체 선정 기준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