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읽는 부동산]
정비사업은 초기 단계부터 협력업체 등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토지 등 소유자들이 각자 돈을 모아 사업비를 마련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인데 시공자를 선정할 때 받는 입찰보증금도 조합의 사업비로 사용하기 위해 대여금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공사계약에 시공자의 자금 대여 조건을 함께 정하기도 한다. 돈을 빌리는 일이 워낙 흔하다 보니 조합과 시공자 사이에서 정식으로 약정을 체결하고 총회 의결까지 받았다면 별다른 행정절차는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자금 차입에 관하여 별도의 신고의무를 두고 있다.
도시정비법 제111조의 2에 따르면 추진위원회 또는 사업시행자가 자금을 차입한 경우에는 자금을 빌려준 상대방, 차입금액, 이자율 및 상환방법 등을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상대방이 금융기관인지 시공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공자가 조합에 운영비나 사업비를 빌려준 경우에도 당연히 신고 대상이 된다. 무이자 대여라고 하더라도 실질이 자금의 차입이라면 마찬가지이다.
신고 기한도 주의해야 한다.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87조의 2는 자금을 차입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정하고 있다. 신고할 때에는 자금을 대여한 상대방, 차입일, 차입액, 이자율, 상환기한 및 상환방법이 기재된 자금차입계약서 사본을 관할청에 제출해야 한다.
시공자와 체결한 공사계약서에 대여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신고 절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조합이 특히 주의할 점이 있다. 자금 차입에 관한 총회 의결과 관할청 신고는 서로 다른 절차라는 것이다. 도시정비법 제45조는 자금의 차입과 그 방법, 이자율 및 상환 방법을 총회 의결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더욱이 이 사항은 대의원회가 총회의 권한을 대신할 수도 없다. 따라서 총회에서 시공자의 자금 대여 조건을 의결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신고의무까지 이행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관할청에 신고했다고 해서 필수적인 총회 의결을 생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부분이 실무에서 놓치기 쉬운 이유는 시공자 대여가 보통 공사계약이나 사업비 조달의 일부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조합 입장에서는 이미 시공자 선정과 계약, 총회 의결까지 거쳤으니 필요한 절차를 모두 마쳤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도시정비법은 ‘돈을 빌리는 행위’ 자체를 별도로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도 부과된다. 도시정비법은 자금차입 사항을 신고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신고한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시행령은 지연 기간에 따라 과태료 금액을 달리 정하고 있으며 5개월 이상 지연하거나 아예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500만원이 부과된다.
정비사업에서는 수십억, 수백억원의 자금이 오가는 만큼 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는 조합 운영의 투명성과 직결된다. 시공자로부터 자금을 빌리는 것 자체가 특별하거나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거래라는 이유로 법에서 정한 절차까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시공자로부터 돈을 빌렸다면 총회 의결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자금을 차입한 날부터 30일이라는 신고 기한도 함께 달력에 표시해 둘 필요가 있다.
김택종 법무법인 센트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