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기에 토마토소스와 치즈, 페퍼로니를 얹은 '피자설기'가 전국 떡집을 넘어 가정의 전자레인지로 들어오고 있다. 떡집에서 백설기를 구하는 대신 즉석밥이나 시판 찰떡만두처럼 마트·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식품을 활용해 피자설기의 맛과 식감을 재현하는 레시피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잇따라 등장하면서다.
피자설기는 백설기에 치즈와 토마토소스, 야채 등 피자 재료를 얹은 빵이다. 부산 남항시장의 영도다리떡방에서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문을 연 이 떡집은 2세가 운영에 합류한 뒤 기존 떡에 젊은 소비자에게 익숙한 식재료를 접목하며 피자설기를 만들었다. 특히 올해 봄부터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면서 수도권 떡집까지 빠르게 번지고 있다.
30일 빅데이터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총 건수가 100건에도 못 미치던 '피자설기' 관련 언급량(인스타그램·블로그·뉴스 합계)은 8월 2554건으로 다시 뛰었고, 9월에는 1만1600건까지 치솟았다.
네이버 데이터랩 역시 4월20일까지 0건이었던 검색량 수치가 이후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하더니 8월부터 폭증하면서 지난 10일 100까지 치솟았다. 네이버 데이터랩 수치는 네이버에서 해당 검색어가 검색된 횟수를 일별, 주별, 월별 각각 합산하여 조회 기간 내 최다 검색량을 100으로 설정해 상대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떡집 오픈런하던 피자설기…이젠 집에서피자설기 열풍으로 전국 유명 떡집 위치와 정보가 온라인에서 공유되며 '떡지순례'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SNS에서는 피자설기 판매처를 모은 지도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픈런에 지친 사람들을 중심으로 피자설기와 비슷한 맛을 구현하려는 흐름으로 변화하는 양상이다.
피자설기를 제대로 만들려면 떡을 찌는 기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본형의 백설기를 가로로 잘라 토마토소스를 바른 후 다시 뒤집고, 그 위에 소스와 피자치즈, 옥수수, 페퍼로니, 블랙올리브 등 피자 재료들을 얹어 전자레인지에서 치즈가 녹을 때까지 약 2분 정도 조리하면 비슷한 맛이 난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레시피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백설기가 두꺼우면 떡 맛의 비중이 커지는 만큼 얇은 설기를 쓰거나 토핑 양을 늘리는 식으로 조절할 수 있다.
'직접 만들어 먹기' 콘텐츠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구독자 1000만명 이상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SIO ASMR'은 이달 마트에서 토마토소스와 치즈 등을 사서 직접 피자설기를 만드는 영상을 공개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가게에서 품절돼 백설기를 사 직접 만들었다"는 식의 후기가 등장하고 있다. 백설기마저 뺀다…즉석밥·찰떡만두로 '2차 변주'아예 피자설기의 핵심 재료인 백설기 자체를 다른 가공식품으로 바꾸는 방식까지 나오고 있다. 백설기의 쫀득한 식감을 살릴 수 있는 대체재를 찾는 방식이다. 특정 완제품을 따라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쌀 또는 떡을 피자 도우로 쓴다'는 조리법으로 분화하는 모습이다.
즉석밥을 활용하는 방식은 백설기를 따로 사야 한다는 번거로움을 낮춘 응용법이다. 즉석밥을 데운 뒤 납작하게 눌러 도우 형태로 만들고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 치즈, 햄·옥수수 등 냉장고 속 재료를 얹어 다시 가열하는 식이다. 백설기 특유의 포슬포슬한 조직을 그대로 재현하는 조리법은 아니지만 '쌀+피자 토핑'이라는 피자설기의 공식을 가정 상비식인 즉석밥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따라 하기 쉽다.
만두를 활용한 변형은 식감에 초점을 맞춘다. CJ제일제당 비비고 공식 SNS에는 최근 유행하는 피자설기를 '찰보리 감자만두'로 응용한 콘텐츠가 올라왔다. 전자레인지만으로 조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자사 만두의 쫀득한 피를 피자설기의 떡 부분처럼 활용하는 방식이다. 백설기를 만드는 대신 만두라는 완제품을 도우 역할로 바꿔 조리 과정을 줄인 셈이다.
농심은 "요즘 '피자설기'가 핫하다길래 저희 '벌집핏자'도 일단 물리적으로 올라타봤다"며 "이름하여 '벌집핏자설기'"라는 게시물을 SNS에 게재해 웃음을 자아냈다. 농심 측은 "쫄깃한 피자설기 위에 바삭한 벌집핏자 토핑으로 '바삭함'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떡 자체의 변주도 이어진다. 최근 tvN '우주떡집'에서는 찰떡을 피자 도우로 사용한 메뉴가 등장했다. 백설기의 포슬한 식감 대신 찰떡의 쫀득함을 살리고 매운 소스를 더했다. SNS에는 아예 '피자 찹쌀떡'을 만드는 레시피도 등장했다. 결국 '백설기+피자'로 출발한 하나의 메뉴가 설기·찰떡·만두 등 쫀득하거나 찰진 탄수화물을 피자 도우 대신 사용하는 하나의 조리 문법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완제품보다 '레시피 IP'…짧아진 유행에 대응법 바뀐다피자설기 열풍이 보여주는 변화는 인기 떡 하나의 등장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식품 유행이 특정 브랜드의 히트상품을 다른 업체가 유사 상품으로 뒤쫓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소비자가 레시피를 복제하고 자기 집에 있는 재료로 다시 변형하면서 유행 자체를 키우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확산 구조는 브랜드에도 '개발 속도'라는 숙제를 던진다. SNS에서 화제가 된 뒤 정식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라인을 잡는 사이 유행이 지나갈 수 있어서다. 실제 올해 편의점 CU는 버터떡이 SNS에서 주목받자 약 한 달 만에 관련 제품을 기획해 내놓았다. 피자설기처럼 조리법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유행에서는 신제품 출시뿐 아니라 기존 상품을 활용한 레시피 콘텐츠, 인기 로컬 브랜드 입점, 단기 팝업 등이 대응 수단이 되는 이유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다음 유행 상품을 누가 먼저 내놓느냐뿐 아니라, 소비자가 따라 만들고 변형하기 쉬운 '레시피' 안에 어느 브랜드가 먼저 들어가느냐도 중요한 시점 같다"고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