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퇴출하는 과정에서 수명이 남은 석탄발전소 21기의 좌초자산이 최대 19조6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민간 석탄발전소 8기의 좌초자산만 10조8000억~11조3000억원으로 추산돼 공기업보다 민간 발전사가 더 큰 손실을 떠안을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의 탈석탄 정책이 발전소 폐쇄 시점뿐 아니라 수조원대 투자자산의 회수 문제와 보상 재원 마련까지 함께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첨단산업 전력수요 늘자 석탄 퇴출 7년 빨라져
30일 국회기후변화포럼 탈석탄 토론회에서 안영환 숙명여대 교수는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력수요와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반영해 분석한 결과 석탄발전 완전 퇴출 시점이 기존 2042년에서 2035년으로 7년 앞당겨질 수 있다고 밝혔다. 첨단산업 등으로 전력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온실가스 배출 상한을 맞추려면 석탄발전을 추가로 줄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석탄발전의 경제성도 공식 폐쇄 시점보다 앞서 악화될 것으로 분석됐다. 메가프로젝트 전력수요를 반영한 시나리오에서는 석탄발전 이용률이 2031년 30% 아래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소 문을 닫기 전에 가동률부터 급락하면서 투자비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안 교수는 가동률 50%를 전제로 수명이 남은 석탄발전소 21기의 좌초자산을 18조6000억~19조6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민간 발전사 8기의 손실액은 10조8000억~11조3000억원으로 공기업보다 많았다.
민간 발전업계에서는 조기 폐쇄에 따른 손실을 발전사에 일방적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손용호 강릉에코파워 부사장은 토론회에서 "법적 근거와 적절한 보상 없이 조기 폐쇄를 추진할 경우 재산권 침해와 정책 신뢰 훼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 석탄발전소의 공공 인수, 조기 감가상각 허용, 대체 사업권 부여 등을 연착륙 방안으로 제시했다.
○전기료 月3200원이면 탈석탄 OK
국민이 부담할 수 있는 탈석탄 비용에도 한계가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이 전문가와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탈석탄을 위해 추가로 지불할 의향이 있는 금액은 가구당 월평균 3230원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추산한 지불의사는 10년간 약 7조1000억원이다.
민간 발전사에 대한 보상 자체에는 국민 59.9%가 찬성했지만 일반 세금을 재원으로 사용하는 데는 57.7%가 반대했다. 보상하더라도 주주 이익까지 보전하기보다는 원리금 상환이 가능한 수준의 최소 보상을 선호하는 응답이 48.2%로 나타났다. 추가 전기요금 부담 의향이 없는 응답자 가운데 23.3%는 탈석탄 비용을 발전회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답했다.
대체 사업권 등 현금 이외의 보상 수단도 주목받았다. 정 연구위원의 조사에서 국민이 선호한 민간 석탄발전소 대응 방식은 대체 사업권 부여가 37.0%로 가장 높았고 공공 인수가 28.2%로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안보전원 지정과 고정비 보전, 가속상각 허용 등을 주요 대안으로 꼽았다.
탈석탄 재원으로는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수입이 거론됐다. 전문가 조사에서 한국배출권거래제(K-ETS) 유상할당 수입을 재원 1순위로 꼽은 비율은 50%였고 1·2순위를 합치면 70%에 달했다. 2030년 유상할당 비중이 50%까지 확대되는 만큼 배출권 수입을 탈석탄 비용의 주요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게 정 연구위원의 제언이다.
탈석탄 지원 특별법 자체에 대한 법학계의 문제 제기도 나왔다. 박시원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이 발전사업자의 자발적인 폐지 신청을 전제로 하고 있어 정부가 발전소 폐지를 직접 명령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별법에 공백 수두룩
특히 흔히 석탄발전소의 폐지 기준으로 알려진 ‘설계수명 30년’도 법적 폐지 시한은 아니라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 11차 전기본에는 30년이 되는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사업자 의향’ 등이 전제돼 있고, 전기사업 허가는 별도로 존속한다는 것이다. 전기본은 행정계획일 뿐 발전사업 허가를 취소하는 행정처분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발전소별 폐지 연도를 법률에 명시하고 연도별 폐지 물량까지 관리하는 방식으로 특별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탈석탄 로드맵과 발전소 지원책을 별개로 두지 말고 하나의 법체계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석탄발전소를 LNG 발전소로 전환하는 방안도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현재 계획대로 석탄발전소 19기를 LNG로 전환하고 LNG 발전소의 설계수명을 30년으로 적용하면 일부 발전소가 2060년대까지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와 또 다른 충돌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별법이 대체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대통령령으로 간소화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논란거리다. 박 교수는 구체적인 대상과 범위, 절차가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만큼 석탄발전소를 대체하는 새로운 화석연료 발전시설의 환경 규제를 완화하는 통로가 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석탄발전소를 ‘안보전원’으로 지정해 폐쇄 이후에도 일정 기간 유지하는 제도 역시 구체적인 탄소배출 한도와 비용 부담 기준이 법률에 충분히 담겨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교수는 안보전원의 설비 규모와 운영 기간·시간을 제한하고 배출량 기준과 비용 부담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역 지원책의 실효성도 과제다. 박 교수에 따르면 기존 ‘정의로운전환특구’는 아직 지정된 곳이 없고, 기후대응기금 신규 사업 가운데 관련 사업 비중도 3.2%에 그쳤다. 특별법이 노동자와 폐지지역 지원을 규정했지만 실제 사업으로 연결되지 못한 기존 제도의 한계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