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창억떡, 피자 설기… 다양한 디저트가 빠르게 유행하는 가운데 조용하지만 새롭게 떠오르는 디저트가 있다. 바로 '퍼지(Fudge)'다. 캐러멜과 캔디의 경계에 있는 이 생소한 미국식 디저트를 국내에 처음 들여온 곳이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퍼지타운'이다.
성수동, 익선동처럼 유행을 타며 새롭게 뜨는 곳과는 거리가 먼 개포동 양재천 건너편의 조용한 주택가 골목. 카센터와 빌라가 늘어선 풍경 속에 노란색 외관으로 동화 속 사탕가게 같은 이곳은 주말 낮이면 호기심 어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일요일이었던 지난달 20일 오후 1시30분께 찾은 이곳은 오픈 시간이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매장 안 쇼케이스에는 이미 인기 메뉴인 소다와 레몬 플레이버가 텅 비어 있었다. 개당 7000원 선(조각 기준)의 만만찮은 가격대에도 빠르게 팔려나갔다.
대기 줄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매장 앞에는 '시식, 보냉 포장 등 서비스 시간이 긴 느린 매장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장인 김원준 대표는 "서비스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좀 느리더라도 이런 방식이 맞는 것 같다"며 "긴 웨이팅에도 기다려준 손님들께 더 친절하고 우렁차게 인사한다"고 말했다. 일부러 찾아온 젊은 사람들부터 "퍼지가 뭐냐"며 호기심에 줄을 선 동네 주민까지 손님 연령층도 다양했다.캐러멜과 캔디의 사이
퍼지는 캐러멜과 캔디의 중간 어디쯤의 디저트다. 잼을 끓였다 식히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치댐을 더해 만든다. 덕분에 처음엔 쫀득하게 씹히다가 입안에서 솜사탕처럼 스르르 녹아내리는 독특한 식감을 자랑한다.
다만 최근 유행했던 버터떡이나 두바이 초콜릿처럼 고소한 맛이나 다채로운 풍미를 기대했다면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다. 말 그대로 사탕과 캐러멜 그 사이의 식감 속에서 단맛이 100% 직관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편이다. 단 맛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도 알록달록한 색상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디저트로 한 번쯤은 충분히 경험해 볼 만하다.
사탕이나 초콜릿처럼 단것이 당길 때 하나씩 꺼내 먹으면 되는데, 김 대표는 "커피나 홍차, 또는 위스키나 코냑 같은 증류주와 곁들이면 훨씬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며 "차갑게 얼려 먹거나 '퍼지 셰이크'로 즐기는 것도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대표 메뉴인 '레몬 샤베트 퍼지'는 산미를 살리기 위해 레몬 제스트를 직접 갈아 넣는 등 미국 현지의 보수적 레시피를 한국인 입맛에 맞게 현지화했다. 진한 초코 베이스에 피넛버터와 캐러멜을 더한 '퍼지 볼 맨' 등은 아메리칸 클래식의 정수를 보여준다.미국·영국서 배워온 퍼지유년 시절 미국 미시간주에서 맛본 퍼지의 기억을 갖고 있던 김 대표는 코로나19 당시 커피업계를 떠나 2022년 직접 미국과 영국의 전통 퍼지 숍을 돌며 만드는 법을 익혔다. 3년간의 준비 끝에 2023년 3월 국내 최초의 퍼지 전문점을 열었다.
오픈 초기 "퍼지가 뭐냐"며 낯설어하던 반응은 디저트 ASMR 크리에이터들 영상이 화제를 모으면서 반전됐다. 최근 SNS 영상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오픈 시간부터 줄을 서야 하는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삼성 등 대기업 단체 주문은 물론, 갤러리아 백화점 팝업스토어에도 진출했을 정도다. 전국 곳곳에서 주문 요청이 쇄도하면서 한정 수량 택배 운영까지 소화하며 탄탄한 수요를 증명하고 있다."여권 없이 미국 여행을"
김 대표가 개포동 주택가 골목을 가게 자리로 택한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권리금을 낼 여력이 없어 무권리 점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양재천 건너 도곡동처럼 조용한 골목도 충분히 매력적인 상권으로 바뀔 수 있다는 잠재력을 믿었다. 실제로 김 대표는 퍼지타운이 문을 연 뒤 주변에 예약제 비스트로와 소품숍들이 들어서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헀다.
공간 구성에도 명확한 의도를 담았다. 노란색 외관을 고집한 이유에 대해 그는 "캐러멜을 시각적으로 연상시키고 싶었다"며 "손님들이 매장에 들어섰을 때 '여권 없이 미국 여행을 하는 느낌'을 받도록 인테리어를 꾸몄다"고 설명했다. 매장 한편에서 판매하는 크루 티셔츠 역시 단순한 굿즈를 넘어 공간의 이국적 분위기를 완성하는 소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조이를 파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 대표는 자신을 단순한 상인이 아닌 '조이(Joy, 기쁨)를 파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매장에 머무는 짧은 순간만큼은 방문객들이 일상의 피로를 잊고 생기발랄한 기쁨을 안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특히 아이와 함께 온 손님이 이곳을 '달콤하고 즐거웠던 공간'으로 기억하길 바란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철학이다.
이러한 진심 어린 태도는 매장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픈 초기 낯선 디저트라는 벽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빠른 회전율 대신 친절과 여유를 택한 퍼지타운은 작은 동네 가게라는 한계를 극복하도 따뜻한 환대와 입소문을 타고 팬덤을 쌓았다.
그는 "상권 전체가 더 살아나려면 개포동 일대 상인들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 등의 작은 변화를 시도했으면 좋겠다"며 동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에서 식품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공간의 '체류 시간'을 붙잡는 강력한 콘텐츠이자 엔터테인먼트가 됐습니다. 사람들을 한두 시간씩 줄 서게 만드는 원동력은 대기업의 대형 신제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골목 상권에서 출발한 개성 있는 로컬 가게들이 유통가의 새로운 플레이어로 자리 잡으며 상권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죠. [먹킷리스트]는 화제의 기업 신제품부터 골목의 로컬 가게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직접 맛보고 리뷰를 통해 이면에 담긴 시장의 흐름과 공간의 맥락도 함께 짚어봅니다. 맛본 모든 제품은 기자가 직접 구매한 '내돈내산'입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