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비틀스 녹음실서 만든 '사계', 10월에 직접 듣는다

입력 2026-09-30 16:00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사계’로 돌아왔다. 비틀스가 녹음한 영국 런던 에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ECO)와 비발디, 피아졸라의 사계를 연주했다. 많고 많은 곡 중 사계를 고른 이유를 물었다.



한수진(40)은 불과 15세이던 2001년 폴란드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2위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다. 2011년 윤소영이 1위, 2016년 김봄소리가 2위에 올라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대회다. 한수진은 20대 중반 턱 수술 이후 6년간 회복기를 거친 뒤 2024년 워너 클래식스에서 첫 정규 앨범인 <An Die Musik>를 냈다. 올해 9월 25일엔 오키드 클래식스를 통해 두 번째 정규 앨범 <사계(The Seasons)>를 발매했다.

녹음 장소는 애비로드 스튜디오. 1931년 탄생한 세계 최초 녹음 전문 스튜디오인 이곳은 비틀스, 퀸, 아델, 오아시스 등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아티스트들이 작업하던 음악의 성지다. 한수진은 4일간 이곳에서 ECO와 비발디, 피아졸라의 사계를 작업했다. 그는 이 스튜디오에 대해 “생각보다 음향이 건조해 놀랐다”며 “느린 악장이 잘 맞았다”고 말했다.



“악보로 안 드러나는 리듬 드러내야 생동감 산다”

사계는 바이올린 협주곡인 비발디의 ‘사계’가 너무나도 유명한 음악계의 단골 테마다. ECO도 사계로 작업한 다른 음반이 있었다. 그런데도 한수진은 자신만의 사계를 선보이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왔다. 그는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두 살 때 영국 맨섬으로 이주했다.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사이 바다에 홀로 솟은 땅이었다.

“맨섬에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만날 수 있었어요. 창밖엔 다양한 풍광의 바다가, 문 뒤엔 광활한 들판이 보이고, 그곳엔 여러 생명체가 살고 있었죠. 그 섬에서 3년 반을 보내며 사계절도 세 번을 겪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을 생생하게 담은 음악으로서의 사계도 자연스럽게 다가왔죠.”



영국에서 학업을 계속해왔기에 ECO와의 만남을 바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상임지휘자가 없는 이 악단과 작업하며 한수진은 디렉터 역할도 맡았다.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었어요. 방향성이 다를 때는 근거를 갖고 그 이유를 설명하니, 악단도 단번에 ‘너무 좋다’며 같은 방향으로 나왔죠. 저는 비발디의 음악에 악보만으로 볼 수 없는, 내면의 리듬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리듬을 드러내야 비발디 특유의 생동감이 살아납니다.”

“피아졸라의 사계엔 바다 공기의 끈적임이 있어요”

굳이 연주에 나만의 무언가를 드러내려 할 필요는 없었다. “같은 작품을 다루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식견과 경험이 음악에 고스란히 묻어난다”고 여겼다. 비브라토(한 음을 떨 듯 내는 기법)는 꼭 필요할 때만 사용했다. 담백한 바로크 시대 스타일과 다채로운 색채를 보여주는 후대 스타일을 절충한 결과다. “당대의 연주법만 상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바흐도 훨씬 더 다양해진 지금의 연주법을 본다면 좋아했을 것 같아요.”



20세기 탱고 음악으로 탄생한 피아졸라의 사계에선 사계절 변화를 마주하는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아르헨티나의 항구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엔 바다 공기에서 체감할 수 있는 끈적임이 있다고.

“피아졸라의 사계엔 탱고 리듬이나 재즈 요소도 있으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죠. (비발디와의) 공통점은 계절뿐인 것 같아요. 피아졸라의 겨울에선 비발디 여름에 쓰인 모티프가 나오는데요, 신기한 게 이 모티프가 비발디 곡에선 여름날의 폭풍우 같은데, 피아졸라의 작품에선 시원한 바닷바람처럼 다가와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부른 슬픈 노래가 바닷바람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요.”



ECO 내한 공연으로 직접 사계 들려준다

ECO는 15년 만에 내한해 다음달 한수진과 내한 공연도 연다. 24일 통영, 25일 인천, 28일 대구, 30일 서울 등을 돌며 관객을 만난다. 연주곡은 비발디의 ‘사계’를 비롯해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 라장조, 로시니 ‘현을 위한 소나타’ 1번, 브리튼 ‘단순 교향곡’ 등이다. “모차르트는 ECO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작곡가입니다. 브리튼의 작품은 ECO에서 하기를 바랐던 레퍼토리죠. 로시니의 곡은 이탈리아의 햇살이 느껴지는 예쁜 작품입니다.”

사계 녹음을 마친 그에게 다음으로 녹음하고 싶은 레퍼토리를 묻자,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꼽았다. 음악인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숙제이자 연주 자체가 특혜”인 곡이라고.

“10대 시절에 녹음 제안이 들어왔는데, 그땐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해 선뜻 수락하지 못했어요. 바흐는 평생 해도 준비가 안 될 것 같지만, 지금은 기록을 남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음악 구조를 제대로 살려야 하고, 정신적으로 감정 소모도 엄청난 데다 테크닉도 고려해야 하니 힘들겠죠. 무대에 섰을 때 가장 고독한 순간도 바흐를 연주할 때예요. 그러면서도 ‘이런 음악이 존재한다’는 데 감사하게 돼요. 바흐만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곡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