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영화 '암살자(들)'의 허진호 감독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부르는 문제를 두고 지난 29일 여야가 맞섰다. 국민의힘은 역사 왜곡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요구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대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창작의 자유는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말이 사자(死者) 명예훼손의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1974년에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은 평생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유족들이 있는 현대사의 비극"이라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박근혜 전 의원에게 직접 사과까지 했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배우가 음모론을 제기하고 '영화인데 뭘 그렇게 따지냐' 이렇게 해서 넘어간다면, 만약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소재로 가족의 배후설, 측근의 배후설을 영화가 강하게 암시해도 그걸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또 "지난해 10월 23일 문체위 국정감사에서 영화 '건국전쟁'을 제작한 김덕영 감독이 참고인으로 출석했다"며 전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걸핏하면 노무현 대통령 이름을 끌어들이지 말라"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어디 이런 식의 음모론이 그렇게 광범위하게 있었느냐"고 따졌다. 이어 "이래서 보수정당이 집권했을 때 문화예술이 꽃피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국민의힘 쪽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권력 유지를 위해 아내의 피격을 기획했다는 인상을 준다'며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한다"며 "영화란 본래 역사적 사실을 픽션화해서 작품을 만드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재미를 주고 팍팍한 인생에 풍부한 문화예술 작품을 만들어 준 허진호 감독을 국회가 격려하지는 못할지언정 국감장에 나오게 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정문 민주당 의원도 "김정일이 사과했다는 것은 당시 '김신조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는 것이지 육영수 여사와 관련해 사과했다는 내용은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조 의원의 발언을 반박했다. 이어 "허 감독 스스로 이런 내용을 의도한 바가 없다고 분명히 했다"며 "감독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부르는 것은 향후 영화감독들의 제작 의지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단순한 영화인데 어떠냐, 문제없다'고 주장하는데 시사회에 참석했던 배우들도 '진실을 찾아가는 숨 막히는 시간', '아프지만 진실은 이긴다', '진실을 찾는 모든 분들께' 같은 댓글을 남겼다"며 "성인조차도 이것을 진실로 왜곡해서 본다는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그러면서 "12세 어린 청소년들은 이게 진실이라고 오해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 아니냐, 이런 부분을 꼭 따져야 한다"고 국감 출석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허 감독에 대한 출석 요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전날 관객 6만1464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되찾았다. 이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발생한 육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 추적극으로, 당시 수사 당국의 공식 결론과 다른 가능성을 열어둔 전개를 두고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