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잘 몰랐던 7兆 부자…2조5500억 재산분할 권혁빈은 누구

입력 2026-10-02 06:02
수정 2026-10-02 12:45
[비즈니스 포커스]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한 이른바 ‘부자의 이상형’을 압축한 밈이 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대신 돈만 많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스마일게이트 창업자 권혁빈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는 이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지분으로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들과는 결이 다르다. 맨손으로 연매출 1조원대 회사를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언론 인터뷰나 공개 행보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혼 재산분할 소송에서 배우자에게 내놓으라는 판결을 받은 금액은 2조5500억원이다. 국내에 공개된 이혼 재산분할 사례 가운데 최대 규모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9월 9일 권 CVO의 배우자가 제기한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사건에서 이혼을 인정하고 재산분할 비율을 권 CVO 65%, 배우자 이 씨 35%로 결정했다. 이 씨에게 돌아갈 재산은 약 2조5500억원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산정한 권 CVO의 전체 재산은 7조3375억원. 이 가운데 스마일게이트 주식 평가액만 7조1049억원으로 전체의 96.8%에 달한다. 비상장사인 스마일게이트의 주식 가치를 법원이 어떻게 평가했느냐에 따라 재산분할 규모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결정은 1심 판결로 확정된 상태가 아니다.

방배동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부부의 회사

사업의 출발점은 재벌가와 거리가 멀다. 1974년생인 그는 전주 상산고를 거쳐 서강대 전자공학과(92학번)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멤버십을 거치며 개발자 경험을 쌓았고 20대에 첫 창업에 나섰다. 교육용 소프트웨어 업체 포씨소프트를 세웠고 사업은 성공적이었지만 주주간 이견으로 회사를 나왔다.

첫 창업이 남긴 경험은 이후 권 CVO의 경영방식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권 CVO와 이 씨는 대학 시절 만나 2001년 결혼했다. 이듬해인 2002년 스마일게이트를 세웠다. 이 대목이 이번 이혼 재산분할의 출발점이다.

초기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된 스마일게이트는 설립 당시 지분이 권혁빈 70%, 이 씨 30%였다. 이 씨는 2002년 7월부터 11월까지 대표이사로 등기됐다. 이 씨가 스마일게이트엔터 지분 일부를 보유하거나 대표이사로 등기된 사정이 이번 재산분할 판단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

권 CVO 측과 이 씨 측의 주장은 이 지점에서 갈렸다. 권 CVO 측은 이 씨가 회사 자본금을 출자하지 않았고 실제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수행한 사실도 없다며 재산 형성 기여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씨 측은 창업 초기 지분을 보유했고 대표이사로 등재됐으며 장기간 가사와 양육을 담당해 권 CVO의 사업 활동을 뒷받침했다고 맞섰다.

법원은 양쪽 주장을 모두 일부 받아들였다. 스마일게이트 성장에는 권 CVO의 사업 능력과 경영 판단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동시에 이 씨의 초기 회사 참여와 장기간 가사·양육 기여도 인정했다. 결과가 65대 35의 재산분할 비율이다.



돈을 만든 것은 ‘크로스파이어’였다

스마일게이트가 처음부터 돈을 찍어내는 회사였던 것은 아니다. 회사의 운명을 바꾼 게임은 2007년 출시된 1인칭 슈팅 게임(FPS) ‘크로스파이어’다.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게임은 중국에서 판이 달라졌다. 중국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FPS 장르에 현지화한 콘텐츠와 서비스 운영을 결합하면서 PC방을 중심으로 이용자가 빠르게 늘었다.

2008년 텐센트와 계약을 맺은 뒤에는 중국 시장에 개발팀을 보내 현지 이용자와 PC 환경에 맞춘 현지화 작업을 진행했다. 크로스파이어의 동시접속자는 2009년 100만 명, 2010년 200만 명, 2011년 300만 명을 넘어섰다.

중국에서 흥행을 이어가면서 스마일게이트의 현금창출력도 커졌다. 이후 MMORPG ‘로스트아크’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며 복수의 게임 IP를 보유한 글로벌 게임그룹으로 성장했다.

권 CVO는 이렇게 벌어들인 자금을 외부 투자 유치나 상장보다는 사업 확장과 지배력 유지에 활용했다. 2010년 지주회사 스마일게이트홀딩스를 세워 지배구조를 정비했고 2012년 이후에는 지주회사 지분 100%를 보유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게임 흥행으로 현금을 쌓고 창업자 지분 희석을 최소화한 것이 현재 권 CVO의 자산 규모를 만든 핵심 배경이다. 스마일게이트가 비상장 상태를 유지해온 것도 이 같은 지배구조와 맞닿아 있다.








왜 최태원보다 두 배 이상 많았나

이번 사건이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기존 최대 기록을 크게 넘어섰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인정된 재산 분할액은 9440억원이었다. 권혁빈 사건의 2조5500억원은 이보다 약 2.7배 많다.

두 사건의 분할액 차이를 배우자의 기여도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출발점은 재산의 절대 규모와 구성이다. 최 회장 사건은 SK 지분을 비롯한 여러 재산의 가치와 분할 대상이 쟁점이었고 권 CVO 사건에서는 스마일게이트 주식이 사실상 재산 대부분을 차지한다.

권 CVO 사건에서 법원이 산정한 순재산은 7조3375억원. 이 가운데 스마일게이트 주식만 7조1049억원이다. 35%를 계산하면 약 2조4867억원이다. 여기에 현금 650억원이 더해져 2조5500억원이 됐다.

특히 권 CVO의 경우 회사가 비상장사라는 점이 변수다. 법원이 산정한 스마일게이트 주식 가치가 7조원을 넘으면서 전체 재산 규모 자체가 크게 올라갔다.




‘은둔의 경영자’가 쌓아 올린 7조원의 가치

권 CVO는 국내 대기업 총수들과 비교하면 외부 노출이 적은 편이다. 스마일게이트 역시 상장을 서두르지 않았다.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창업자 중심의 지배구조를 유지하면서 사업에서 벌어들인 현금을 재투자하는 방식이었다.

권CVO가 사회공헌 재단인 희망스튜디오, 창의 교육 저변을 확대하는 퓨처랩, 청년 창업자를 지원하는 오렌지플래닛 등 재단 3개를 운영하며 활발하게 사회공헌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비상장 회사라는 배경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스마일게이트는 크로스파이어 이후 ‘로스트아크’ 등에 장기간 개발비를 투입했고 게임 사업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다시 성장에 사용했다. 스마일게이트는 크로스파이어에서 확보한 현금과 이후 로스트아크 등에서 발생한 수익을 바탕으로 외부 자본 의존도를 낮출 수 있었다.

상장을 통한 대규모 자금조달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작았고 그 결과 창업자가 지분을 희석하지 않는 구조가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권 CVO가 보유한 회사 지분은 재산 형성의 핵심 자산으로 남았다.

공개시장에 주식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에서 매일 가격이 형성되는 상장사와 달리 외부에서 권 CVO의 자산 규모를 체감하기도 어려웠다. 권 CVO의 재산은 부동산이나 여러 상장사 주식에 분산된 형태가 아니라 자신이 창업한 비상장 회사의 지분에 집중돼 있다. 법원이 평가한 7조3375억원 가운데 7조1049억원이 스마일게이트 주식이라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100%→65%…회사의 다음 주인은 누구

1심 판결이 확정되면 스마일게이트의 지분 구조는 권혁빈 65%, 이 씨 35%로 바뀐다. 권 CVO는 여전히 과반을 확보한다. 일상적인 경영권이 당장 넘어가는 구조는 아니다. 문제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두 번째 대주주’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35%는 단순한 소수지분과 다르다. 정관 변경이나 합병·분할 등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한 사안에서는 권 CVO가 단독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20년 넘게 이어진 권 CVO의 100% 지배구조가 처음으로 깨지게 된다.

향후 변수도 많다. 이 씨가 지분을 계속 보유할지, 외부 투자자에게 매각할지, 권 CVO가 이를 다시 사들일지에 따라 회사의 주주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경우에도 35% 지분은 새로운 변수가 된다.

다만 아직 지분이 실제로 넘어간 것은 아니다. 권 CVO 측은 9월 28일 항소했고 이 씨 측도 다음 날 항소장을 제출했다. 권 CVO 측은 재산분할뿐 아니라 이혼 판단에도 불복한다는 입장이다. 이 씨 측은 이혼 자체는 받아들이면서 재산분할 규모 등에 불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의 100% 지배구조가 실제로 65대 35로 바뀔지는 항소심 이후에 결정된다. 권 CVO 측은 항소심에서 경영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지분을 유지하는 대신 현금 정산을, 이 씨 측은 스마일게이트 지분 확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지분을 어떤 방식으로 나눌지가 항소심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