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입고 댕기 머리를 한 자유의 여신상이 그려진 막걸리 캔. 미국 주류회사 술(Sool)의 막걸리 브랜드 ‘마쿠(Makku)’를 대표하는 디자인이다. 뉴욕의 상징에 한국을 입힌 이 이미지처럼 마쿠에는 두 문화권을 오가며 살아온 한국계 미국인 박지영(Carol Pak) 대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17년 미국 뉴욕에서 출발한 마쿠는 한국의 전통 막걸리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브랜드다. 쌀을 쪄 누룩으로 발효하는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지키면서도 캔 용기와 유통 전략 등에서는 미국 소비자의 생활방식에 맞춘 현지화를 택했다.
마쿠는 현재 홀푸드마켓을 비롯한 미국 주요 식료품 체인과 아시아 마트, 레스토랑 등 23개 주 약 1400개 유통 채널에 막걸리를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주 기반 칵테일 브랜드 ‘소쿠(Soku)’를 선보이며 K-주류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한국계라는 배경과 두 문화에 대한 이해는 마쿠를 미국 시장에 안착시키는 데 어떤 경쟁력이 됐을까. 박 대표에게 그 이야기를 직접 물었다.
◇ 한국에서 찾은 ‘진짜 막걸리’
마쿠의 시작은 2017년 박지영 대표가 한국 여행 중 찾은 한 막걸리 바였다. 그곳에서 마신 한국 막걸리 한 잔은 그동안 미국에서 접해온 막걸리에 대한 그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박 대표는 “당시 미국 시장에 유통되던 수입 막걸리는 쌀을 찌는 대신 쌀가루나 생쌀을 사용하고 인공 향료를 더해 품질이 떨어졌다”며 “한국에서 맛본 진짜 막걸리의 맛과 가치가 미국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주류업계에서 일하던 그는 이 일을 계기로 ‘한국의 술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생각은 곧 실행으로 옮겨졌다. 박 대표는 사업을 구상하며 스트롱벤처스에 직접 연락해 첫 투자를 유치했고 이를 발판 삼이 막걸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제품 개발은 어머니와 함께 시작했다. 영어로 된 막걸리 양조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어머니가 한국어 문헌을 찾아 제조법을 연구했고 박 대표는 직접 맛을 보며 의견을 더했다. 몇 달간의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막걸리는 직접 캔에 담아 판매했다.
이후 판매량이 늘면서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한국의 전문 양조장에 생산을 맡겼다. ‘뉴욕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만들어진다(Born in NY, made in Korea)’는 마쿠의 태그 라인도 이러한 생산 과정이 담겨있다.
뉴욕 퀸스의 한인 공동체에서 자란 박 대표에게 한국 문화를 사업으로 풀어내는 일은 오래전부터 품어온 꿈이기도 했다. 주변에 한국인이 많은 환경에서 성장한 만큼 어린 시절부터 한국 문화와 가깝게 지냈고 언젠가는 이를 자신의 사업과 연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박 대표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배경은 한국 문화와 관련된 사업을 할 때 분명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직접 경험한 문화에서 이야기를 가져올 수 있고 브랜드의 진정성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전통은 지키고 장벽은 낮추고
마쿠를 만들면서 박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한국 고유의 막걸리 제조 방식을 지키는 것이었다. 쌀을 쪄 사용하고 한국의 전통 발효제인 누룩으로 빚는 과정. 인공 향료와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원칙으로 삼았다.
박 대표는 “이런 요소들이 진정성 있는 막걸리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미국에서 판매되는 다른 수입 막걸리와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에게 이를 전달하는 방식에서는 현지 시장의 특성을 적극 반영했다. 출시 전 소비자 조사를 진행한 결과 막걸리를 처음 접한 미국인들이 가장 낯설어한 요소 중 하나는 뿌옇고 흰 색깔이었다.
이에 마쿠는 캔 전체를 흰색으로 디자인해 소비자가 제품을 접하기 전부터 막걸리의 색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도록 했다. 망고·딸기 등 과일 맛을 함께 내놓은 것도 처음 막걸리를 접하는 소비자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선택이었다.
용기 역시 현지에 맞췄다. 커다란 병에 담긴 막걸리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마시는 한국의 음용 문화를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1인용 음료에 익숙한 미국 소비자를 고려해 캔을 택했다.
제품을 어떤 술로 인식시킬지도 새로 정했다. 미국에서 막걸리는 흔히 ‘라이스 와인’으로 불렸지만 박 대표는 막걸리가 ‘라이스 비어’에 가깝다고 봤다. 와인이 식사와 함께 즐기는 술이라면 막걸리는 맥주처럼 보다 가볍고 일상적으로 마시는 상황에 어울린다는 판단에서다. 곡물인 쌀을 발효해 만든다는 점에서도 맥주가 소비자에게 더 직관적인 비교 대상이었다. 이에 와인 코너가 아닌 맥주 매대 주변에 제품을 배치했다.
결국 마쿠의 현지화는 한국적인 요소를 덜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지를 구분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박 대표는 “한국 문화를 미국 시장에 그대로 반영하기는 어렵기에 어느 정도의 현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한국에 대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소비자가 받아들이기 쉽게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 마쿠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 막걸리 넘어 ‘K-주류 플랫폼’으로
초기 마쿠의 주요 판매처는 한인 유통업체와 아시아계 레스토랑이었다. 고객층 또한 자연스럽게 아시아계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성장이 본격화한 것은 미국 식료품 체인 홀푸드마켓에 입점하면서부터다. 일상적으로 장을 보러 온 일반 소비자들의 눈앞에 마쿠가 놓이기 시작한 것이다.
박 대표는 “고객층이 넓어진 가장 큰 이유는 제품이 어디에 놓여 있고 소비자가 얼마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며 “구매 접근성을 높인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주류 유통시장이 급변한 것도 마쿠의 전략에 영향을 줬다. 주류 유통업체의 폐업과 업계 통합이 잇따르면서 마쿠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이에 판매처 숫자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대신 기존 주요 유통망의 판매 실적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전체 입점 매장 수는 2024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핵심 판매처에서 제품이 팔리는 속도는 빨라졌다. 대표적으로 홀푸드마켓에서 최근 52주간 기록한 순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0% 증가했다.
마쿠의 다음 목표는 미국 주류 시장에서 막걸리를 하나의 독립적인 주류 카테고리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 주류·담배세무무역국(TTB)의 공식 주류 분류에서 막걸리는 독자적인 카테고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는 기존 진출 지역 내 판매처를 확대하는 동시에 텍사스 등 새로운 미국 시장과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막걸리뿐 아니라 소주 기반 칵테일 ‘소쿠’ 등으로 제품군을 넓혀 한국 술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플랫폼으로 회사를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단순히 막걸리 한 제품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술 전반을 만들고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싶다”며 “고품질의 진정성 있는 한국 술을 더 많은 소비자에게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