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신축 30평대 아파트도 알아봤지만, 출퇴근 시간과 주변 인프라를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결국 평수를 확 줄여서라도 강남에 남기로 했습니다. 방 하나, 거실 하나면 부부가 살기엔 충분한 것 같아요."
최근 강남구에서 전용면적 40㎡ 미만의 아파트를 매수한 30대 직장인 김모 씨의 말이다.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와 보유세 강화 등으로 강남 아파트 시장이 주춤하고 있지만, 방 1~2개짜리 '초소형 아파트'는 연일 신고가를 기록하며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집이 좁아도 직장이 가깝고, 편의 시설 등 주거 환경이 좋은 곳에 살고 싶어 하는 최근 주거 트렌드와 대출 한도 축소로 구매력이 제한된 시장 현실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3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리센츠' 전용면적 27㎡는 지난 28일 19억5000만원에 손바뀜하며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이 단지 같은 면적대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15억원 중반대에 거래됐었는데, 올해 들어서만 4억원가량 상승했다.
초소형 아파트 강세는 비단 한 단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까치마을' 전용면적 34㎡는 지난 7일 15억5000만원에 손바뀜하며 신고가를 새로 썼다. 이 단지 같은 면적대는 지난 8월 1건, 7월 6건 거래되며 꾸준히 거래됐고, 거래 가격도 우상향했다.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역삼아이파크' 전용면적 28㎡도 지난 8월 11억5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아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직전 거래가인 지난 4월 10억1000만원에 비해 1억4000만원 뛰었다. 강남구 삼성동의 '삼성 힐스테이트' 전용 40㎡도 지난 8월 19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2월 경신한 최고가인 19억9000만원에서 불과 4000만원 빠진 금액이다.
송파구 대장 아파트 중 하나인 '헬리오시티' 전용 39㎡도 지난 7월 21억원 최고가를 새로 쓴 뒤, 20억원대 초반에서 2건이 추가로 거래되며 가격 방어에 성공했다.
초소형 아파트를 향한 매수세는 데이터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서울 전용 40㎡ 이하 아파트 실거래 가격지수는 지난 7월 103.0으로 전월 대비 3.05% 상승했다. 초소형 아파트 상승률은 중소형(전용 60㎡ 초과~85㎡ 이하·1.46%)과 비교하면 두 배를 웃돌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91.6)과 비교하면 12.44% 급등한 수치다.
매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올해 초소형·소형 거래 건수는 총 2만2298건으로 전체의 44.97%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비중(42.33%)보다 2.64%포인트 오른 수치다. 같은 기간 중소형 거래 비중은 42.15%에서 40.73%로 하락했다.
초소형 아파트는 통상 전용면적 50㎡ 이하의 방 1~2개 구조의 아파트를 의미한다. 당초 공급 당시엔 재개발·재건축 지역 내 '지분 쪼개기'로 늘어난 조합원에게 입주권을 챙겨주기 위한 건설사의 구제책 성격이 강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상품성이 낮은 매물로 인식됐다. 그러나 대출 규제로 촉발된 최근의 매매 트렌드가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켰다. 초고가 주택이 밀집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집값이 몇 주째 빠지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의 문턱이 낮다는 이유로 인기를 누리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초소형 아파트의 인기 배경으로 '달라진 가구 형태'와 '대출 규제'가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한다. 1~2인 가구 비중이 늘면서 넓은 집을 고집할 필요성이 줄어든 데다, 쾌적한 생활 인프라와 직주근접을 중시하는 2030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팍팍해진 대출 규제로 고가 대형 평형에 대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한정된 예산으로 강남권에 진입하려는 수요자들이 그나마 진입 장벽이 낮은 초소형으로 눈을 돌렸다는 설명이다. 강남 3구 전반의 집값이 주춤한 상황에서도 '면적'보다는 '입지'를 우선순위에 두는 현상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핵심지 아파트에 대한 구매 욕구는 그대로인데, 정부가 대출 규제 등으로 구매 능력을 제한하자 '면적'을 포기하는 선택이 늘어나고 있다"며 "핵심 입지의 초소형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계속되면서 당분간 면적별 가격 격차가 추가로 좁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