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공장, 예정대로 못 짓는다”…수조 원 투자 검증하는 AI [베인의 위닝 전략]

입력 2026-10-14 06:02
[베인의 위닝 전략 - AI 운영혁신 시리즈]




브라질에서 항공유용 바이오연료 정제공장을 짓고 있는 한 재생에너지 기업은 최근 최종 투자 결정을 앞두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리스크 분석을 진행했다.

당초 회사가 세운 기준 사업비는 약 15억달러, 완공 목표는 2029년 4월이었다. 그러나 7개 계약 패키지에 걸친 33개 원가 리스크와 13개 일정 리스크를 넣고 시뮬레이션을 1만 번 반복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보수적 시나리오에서 사업비는 최대 19억달러까지 불어나고 공사는 420일가량 늦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투자 승인 도장을 찍기 전에 3억달러 규모의 초과 가능성을 미리 확인한 것이다.

이 회사는 핵심 리스크의 발생 확률과 범위가 빠져 있는 등 회사가 관리해 온 리스크 목록 자체의 허점도 드러나면서 예비비 규모를 다시 따져볼 근거까지 확보했다.

에너지·화학·배터리 업계는 최근 대규모 투자와 구조 재편을 동시에 치르고 있다. 석유화학은 수요 부진과 공급과잉, 마진 압박이 맞물린 장기 다운사이클에 들어서며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업계 통합이 빨라졌고 배터리 업계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 급증에 맞춰 생산·물류망을 다시 짜는 중이다.

원자재 가격 변동성과 공급망 불안, 신사업 투자 부담까지 겹치며 수익성 개선이 구조적으로 제한되는 상황에서 계획과 현실의 간극을 데이터로 메우는 AI 운영혁신이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낙관 편향 걷어내는 ‘확률의 눈’

에너지 산업은 업(業)의 특성상 조(兆) 단위 설비투자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투자 심의 단계에서 검토하는 시나리오가 제한적이고 리스크 반영이 부족해 계획 대비 비용 초과와 일정 지연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도입하는 확률적 리스크 분석은 이 ‘낙관 편향’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불확실한 변수들을 무작위로 뽑아 시뮬레이션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한 뒤 가능한 결과의 분포를 추정하는 몬테카를로 기법이 대표적이다.

결과를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범위로 추산한다. 시뮬레이션 결과의 절반이 그 아래에 들어오는 평균 시나리오와 90%가 들어오는 보수적 시나리오를 함께 제시해 경영진이 보고된 기준 계획이 아닌 리스크가 조정된 수치를 놓고 판단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런 검증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AI와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피크 수요가 26%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발전·송배전 인프라 투자 규모가 급증하고 있지만 비용 초과와 공기 지연은 반복되고 이사회 승인 자료에서 원가와 공정 리스크가 충분히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확률 분석은 업계에서 통용되는 설계 성숙도 기준을 적용해 아직 리스크 목록에 잡히지 않은 숨은 리스크까지 범위에 반영한다. 리스크별 영향도와 필요 예비비를 숫자로 정량화해 예산 초과가 현실화하기 전에 실무진이나 경영진이 개입할 근거를 만든다.

공사 일정 자체를 AI로 다시 짜는 생성형 스케줄링 기법도 등장했다. 수천 개의 공정 시나리오를 AI가 탐색해 최적의 공사 순서와 비용, 공기의 조합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한 대형 태양광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는 당국이 허가한 기간 안에 수목 제거를 마치지 못해 공기가 약 12개월이 밀렸다. AI는 세 가지 만회 시나리오를 계산했다. 3개 공사 단계를 겹쳐 진행하는 병렬화 작업으로 152일, 하루 13시간의 작업 가능 시간을 2교대로 채우는 방식으로 83일, 두 방안을 결합하고 주 공정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복합 최적화로 234일을 줄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기법은 사업 타당성 검토 초기에 도입할수록 효과가 크다. 일반적으로 공기를 15~20% 줄이고 투자비를 5~10% 아끼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인 사업이라도 일정을 다시 짜 통상 10~15%의 공사 기간을 회복할 수 있다.

공장과 공급망의 데이터가 돈이 되는 순간

투자 결정 이후의 운영 단계에서도 AI의 쓰임새는 넓어지고 있다. 향후 10년간 1400억달러 이상의 설비투자를 앞둔 미국의 한 전력회사는 자재가 흐르는 물류망 전체를 컴퓨터 안에 그대로 본뜬 가상 모델, 이른바 디지털트윈으로 만들어 창고 배치와 운송 경로를 다시 설계했다.

그 결과 연간 2500만~3000만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고 거점 물류센터 통합으로 전체 재고를 10%가량 줄이면서도 자재 공급 서비스 수준은 유지했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 BP의 사례는 AI를 생산 현장에 심었을 때의 효과를 보여준다. BP는 AI 운영 플랫폼을 도입해 유정과 정유소, 생산설비 등 전사 자산에 흩어져 있던 200만 개 센서의 실시간 데이터를 하나의 운영 화면으로 통합했다.

단순 반복 연산에 의존하던 원유 이송 경로 결정은 몇 초 만에 최적안을 찾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정비 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얻는 시간은 75% 줄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BP는 하루 약 3만 배럴의 원유를 추가 생산해 매년 수억 달러의 매출을 더 올릴 수 있게 됐다.

글로벌 석유 가스 탐사·생산 기업 아파치도 데이터 단편화와 프로세스 불일치로 어려움을 겪다가 수천 개 유정의 실시간 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해 현장의 알림 관리를 효율화했고 여러 소스에 흩어진 배출 데이터를 자동으로 취합하는 체계까지 갖춰 환경 과제 대응력을 끌어올렸다.

신사업 개발에서 재무·구매 영역까지…다양한 분야 도입되는 AI

AI는 성숙기에 접어든 자산에서 숨은 가치를 캐내는 데도 쓰인다. 한 글로벌 석유가스 기업은 해양 생산 자산의 운영·정비·지출 데이터를 AI와 대규모언어모델(LLM)로 통합 분석해 가동 중단 통계에는 잡히지 않던 손실을 찾아냈다. 단일 자산에서만 연 1억~2억달러 규모의 현금흐름 개선 기회가 확인됐고 진단에 걸리는 시간도 40%가량 단축됐다.

신사업 개발에서도 마찬가지다. 재활용 소재에 투자한 한 화학회사는 생성형 AI로 시장별 300~400개 잠재 고객 브랜드를 평가해 200개가 넘는 신규 용도를 발굴했고 수개월 걸리던 영업 전략 수립을 몇 주 만에 끝냈다.

구매 영역에서는 에틸렌·프로필렌 가격이 최대 60% 하락한 석유화학처럼 구조 재편이 불가피한 업종을 중심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AI 모델이 수많은 공급업체의 도구와 서비스를 90% 안팎의 정확도로 자동 분류해 기능이 겹치는 업체를 걸러내고 흩어진 지출을 소수 전략 파트너로 모아 외부 비용을 7~25% 이상 절감하는 접근이 쓰인다.

재무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사업부와 전사 전망에서 매출과 운영비용의 세부 내역이 보이지 않아 애를 먹던 한 에너지 기업은 재무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는 데이터 레이크를 구축해 사업부와 자산 단위까지 수익과 비용을 내려다보는 예측 체계를 갖췄고 수작업에 의존하던 전망 프로세스를 자동화했다.

국내 에너지·소재 기업들도 포트폴리오 재편과 대규모 신증설이라는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업 전환과 글로벌 생산거점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운영 복잡도는 커졌지만 공장 간 생산성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투자 심의 자료의 리스크 가시성도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조 원의 향방을 가르는 의사결정일수록 감이 아닌 확률과 데이터가 먼저 검증하게 하는 체계를 갖추는 일이 전환기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베인앤드컴퍼니 박지호 파트너·최태호 부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