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 출하된 SSD와 하드디스크(HDD), 테이프에 담긴 데이터를 모두 하나의 공간에서 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 기업용 저장장치 업체 넷앱이 인공지능(AI) 시대를 겨냥해 ‘제타바이트(ZB)’ 규모의 데이터를 하나의 저장공간처럼 관리하는 기술을 내놨다. AI가 기업 곳곳에 흩어진 방대한 데이터를 찾아 쓰도록 저장장치의 규모를 한 단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조지 쿠리안 넷앱 최고경영자(CEO)는 연례 컨퍼런스 ‘넷앱 인사이트 2026’을 하루 앞둔 2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로운 파일시스템 ‘프로젝트 노버스(Project Novus)’를 공개했다.
쿠리안 CEO가 특히 강조한 것은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규모다. 노버스는 여러 종류의 데이터를 하나의 ‘네임스페이스(namespace)’ 아래 묶어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네임스페이스는 여러 저장장치에 흩어진 데이터를 AI가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창고처럼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주소 체계다.
네임스페이스의 관리하는 데이터 규모는 여러 제타바이트(ZB)에 달한다. 1제타바이트는 1000엑사바이트(EB),100만페타바이트(PT), 10억테라바이트(TB)다. 256기가바이트(GB) 기준 스마트폰 40억개가 저장하는 용량이 하나의 파일 관리시스템에서 가동되는 것이다.
쿠리안 CEO는 “페타바이트도, 엑사바이트도 아닌 수천 엑사바이트 규모”라며 “지난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 출하된 모든 SSD와 HDD, 테이프의 용량을 하나의 네임스페이스 아래 통합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저장장치가 커지는 것은 AI가 읽어야 하는 데이터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어서다. 기업들이 수십 년간 쌓아놓은 문서와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는 여러 부서와 데이터센터, 클라우드에 나뉘어 있다. AI 에이전트가 사람을 대신해 실제 업무를 처리하려면 이 데이터를 필요한 순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쿠리안 CEO는 기업들이 AI를 실제 업무에 도입할 때 ‘인프라’와 ‘데이터’라는 두 가지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직의 93%가 AI를 시범 단계에서 실제 운영 단계로 옮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기업의 지식과 맥락을 모델에 전달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규모만 키운 것은 아니다. 넷앱은 노버스가 초당 100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이를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초당 100TB(100TB/s) 파일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데이터 창고를 만드는 동시에 수많은 GPU가 필요한 데이터를 빠르게 꺼내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AI 인프라에서 이런 데이터 공급 속도는 점점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쿠리안 CEO는 “GPU는 CPU보다 훨씬 빠르게 작동하지만 대부분의 GPU가 필요한 속도로 데이터를 공급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GPU를 대규모로 확보해도 저장장치에서 데이터가 늦게 넘어오면 연산 장치가 기다리는 시간이 생긴다는 얘기다.
넷앱은 여기에 데이터를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AI 데이터 엔진(AI Data Engine)’도 붙였다. 넷앱 장비뿐 아니라 다른 회사 시스템에 저장된 파일과 오브젝트 데이터를 모아 목록화하고 메타데이터와 지식그래프를 연결하는 소프트웨어다. 단순히 수많은 데이터를 한데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고 AI가 데이터 사이의 관계까지 파악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넷앱의 전략은 AI 시대의 저장장치를 단순한 데이터 창고에서 ‘기업의 모든 기억을 AI에 연결하는 인프라’로 바꾸는 것이다. AI 모델과 GPU는 계속 교체되지만 기업이 오랜 기간 축적한 데이터는 남는다. 쿠리안 CEO는 “모델은 바뀌고 컴퓨팅은 계속 빌려 쓰게 되며 기술 구조도 진화하지만 모든 경우에 변하지 않는 것은 기업 자체의 데이터”라고 강조했다.
라스베이거스=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