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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년까지 현재 약 4000억달러의 매출을 내는 의약품이 특허 만료를 맞으면서 글로벌 대형 제약사의 성장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후기 임상 파이프라인의 기대수익률은 관련 비용을 간신히 웃도는 수준까지 낮아졌고, 부족한 신약을 메우려는 바이오기업 인수 가격은 높아졌다. 제약사의 기업 가치는 보유한 블록버스터보다 감소할 매출을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대체하느냐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허 만료 매출 4000억달러30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대형 제약사의 성장 방식은 그동안 비교적 단순했다. 특허로 보호받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에서 높은 이익을 얻고, 그 돈으로 신약을 개발하거나 바이오기업을 인수했다. 특허가 끝나기 전에 새로운 대형 의약품을 출시해 매출을 이어가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 공식의 전제가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33년까지 특허가 끝나는 의약품의 현재 매출을 합치면 약 4000억달러에 달한다. 특허가 만료되면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가 시장에 들어오고 기존 의약품의 가격과 점유율은 빠르게 떨어진다. 업계에서 이를 특허절벽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문제는 사라지는 매출을 대신할 신약의 경제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독일계 투자은행 베렌베르크는 글로벌 제약사의 2026년 후기 임상 파이프라인에서 예상되는 연 환산 투자수익률을 9%로 추산했다. 2016~2024년 평균인 11%보다 2%포인트 낮다.
제약업종의 자본비용은 약 8%로 추산됐다. 자본비용은 주주와 채권자가 회사에 돈을 댄 대가로 요구하는 최소수익률이다. 신약 파이프라인 수익률이 9%라면 실패 위험을 감수하고도 남는 여유가 1%포인트에 불과한 셈이다.
사노피와 노바티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은 파이프라인 기대수익률이 자본비용보다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예상 수익이 투자자가 요구하는 최소수익률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약값 인하 정책과 중국 제약사의 부상도 향후 수익률을 낮추는 변수로 꼽혔다.비만치료제 빼면 수익률 2.9%딜로이트가 상위 20개 글로벌 바이오·제약사의 후기 파이프라인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하다. 딜로이트가 계산한 2025년 연구개발 내부수익률은 7.0%였다. 2024년 5.9%보다는 높아졌다, 하지만 비만·당뇨 치료제인 GLP-1 계열을 제외하면 수익률은 2.9%에 그쳤다.
비만치료제는 2022년만 해도 후기 파이프라인 예상 매출의 1%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비중이 25%로 커지며 16년 만에 항암제를 제치고 가장 큰 파이프라인 분야가 됐다. 반면 신약 하나를 발굴 단계에서 출시까지 개발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은 2024년 22억3000만달러에서 지난해 26억7100만달러로 약 20% 증가했다.
매출 집중도도 높아졌다. 딜로이트가 분석한 후기 개발 자산 가운데 연 매출 10억달러 이상이 예상되는 후보물질 54개는 전체의 9%에 불과했다. 이들이 전체 예상 매출의 약 70%를 차지했다.
콜린 테리 딜로이트 생명과학 파트너는 "겉으로는 연구개발 생산성이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GLP-1 의약품에 대한 업계 전체의 의존이 거품 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비드 채프먼 딜로이트 생명과학 디렉터는 "이 정도의 자산 집중은 전례가 없으며 임상 실패와 규제, 보험급여 충격에 대한 민감도를 높인다"고 평가했다.
소수 의약품이 전체 파이프라인 가치를 결정하면 성공할 때의 보상은 커지지만 실패했을 때의 손실도 확대된다. 비만치료제의 판매량이 예상보다 적거나 가격이 떨어지고, 경쟁사의 더 편리한 알약이나 월 1회 주사제가 출시되면 업계 전체의 연구개발 수익률이 동시에 낮아질 수 있다.
노보 주가 하락노보노디스크가 지난 21일 내놓은 장기 성장계획은 시장의 달라진 기준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마이크 두스트다르 노보노디스크 최고경영자(CEO)는 "2030년까지 연 매출 10억달러 이상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5개 넘게 출시하고, 2035년에는 현재 파이프라인에서 1500억덴마크크로네(약 230억달러)의 매출을 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일 노보노디스크 주가는 장중 9% 떨어졌다.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온 위고비와 오젬픽의 핵심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2030년대 초부터 특허 만료를 맞기 때문이다. 노보노디스크 주가는 사상 최고점보다 70% 넘게 하락했다. 한때 6000억달러를 웃돌았던 기업가치는 경쟁 심화와 가격 하락 우려로 크게 줄었다.
경쟁사 일라이릴리의 비만치료제 젭바운드 매출은 올해 위고비보다 70억달러 이상 많을 것으로 LSEG는 전망했다. 노보노디스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90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자발적 퇴사자까지 합쳐 1만3000명이 회사를 떠났다고 밝혔다.
마르쿠스 만스 유니온인베스트먼트 펀드매니저는 "노보노디스크가 2032년 세마글루타이드 특허 만료에 어떻게 대응할지 거의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에번 사이거먼 BMO 애널리스트도 "회사가 제시한 연평균 3.6%의 매출 증가율은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며 "성장계획을 실행할 입증 책임이 경영진에 남았다"고 분석했다.
노보노디스크는 반론을 제시했다. 마르틴 홀스트 랑에 최고과학책임자는 "차세대 비만치료제 제나감타이드의 주사제와 경구용 제품을 동시에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두스트다르 CEO는 "2030년까지 환자 수를 6000만 명 이상으로 늘리고, 먹는 비만치료제를 1500만 명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생산능력을 열 배 확충하겠다"고 했다.
임상 악재에 300억달러 증발자체 개발의 위험이 커지면 제약사는 외부에서 신약을 사 온다. 그러나 기업 인수도 안전한 해법은 아니다. 노바티스는 이달 임상 악재가 잇따르면서 약 300억달러의 시가총액을 잃었다. 회사는 세 명의 환자가 숨진 뒤 실험용 세포치료제 관련 임상시험 여덟 건을 중단했다. 콜레스테롤 치료제 펠라카르센은 심혈관질환 감소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
노바티스가 120억달러를 들여 인수한 미국 아비디티의 근육질환 치료제도 후기 임상시험에서 실패했다. 해당 발표 직후 노바티스 주가는 10% 하락했다. 올해 복제약 출시로 엔트레스토와 프로막타, 타시그나 등에서 약 40억달러의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외부에서 확보한 성장동력까지 흔들렸다는 평가다. 중국 신약을 사는 서방 제약사신약 확보 경쟁은 연구개발 글로벌 지리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유럽 제약사들은 중국 바이오기업이 개발한 후보물질을 사들이거나 공동 개발하는 방식으로 파이프라인을 채우고 있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은 지난 5월 중국 헝루이와 13개 초기 신약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전략적 협력 계약을 발표했다. 헝루이의 항암·혈액질환 자산 4개, BMS의 면역질환 자산 4개와 공동 발굴·개발 프로그램 5개로 구성된다. 선급금은 6억달러다. 옵션 행사와 개발·허가·판매 성과 등에 따라 총계약금액은 최대 약 152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
계약 대상 13개 프로그램은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아직 들어가지 않은 초기 단계다. 해당 거래가 보여주는 것은 계약액 자체보다 미국 대형 제약사가 중국의 초기 연구개발 능력까지 파이프라인 공급망으로 편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노피도 중국 시노바이오팜 계열사로부터 혈액암 치료제의 글로벌 판권을 도입했다. 계약금은 1억3500만달러이다. 개발과 허가, 판매 실적에 따라 최대 14억달러를 추가 지급하는 구조다. 최대 계약 가능액과 당장 지급되는 금액 사이에는 열 배가 넘는 차이가 난다.
반면 유럽의 연구개발 기반은 약해지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GSK, 노보노디스크, 노바티스, 로슈, 사노피 등 유럽계 제약사 아홉 곳의 이사회 의장들은 지난 22일 공동서한을 내고 미국과 중국에서 최근 2년간 발표된 제약 투자액이 6000억달러를 넘는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유럽의 세계 제약 연구개발 비중은 1990년 43%에서 현재 31%로 떨어졌다. 상업적 임상시험 비중은 10년 사이 절반으로 줄어 9%가 됐다. 이들은 “유럽의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며 "임상시험 승인 단축과 지식재산권 보호, 의약품 투자 확대"를 요구했다.
바이오시밀러는 ‘황금기’대형 제약사의 특허절벽은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 기업에는 성장 기회다. 기존 의약품과 효능이 동등한 제품을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산도즈의 올해 2분기 매출은 30억1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 증가했다. 바이오시밀러 매출은 환율 영향을 제외하면 22% 늘었고 전체 매출의 33%를 차지했다. 상반기 북미 바이오시밀러 매출 증가율은 47%에 달했다.
리처드 세이너 산도즈 CEO는 "앞으로 10년간 특허가 끝나는 의약품의 매출이 6500억달러"라며 "바이오시밀러 업계에 황금의 10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시스템에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특허 만료와 경쟁제품 출시는 치료비를 낮추고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인다. 기존 제약사도 수익성이 낮은 제품에서 자본을 빼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 특허절벽을 제약산업 전체의 붕괴로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