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불신이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커진 가운데 통일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더 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관계가 개선됐다가 다시 악화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북한 피로감’이 쌓인 데다 통일 이후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부담에 대한 우려도 커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미국을 핵심 협력국으로 보는 인식 역시 여전히 높았지만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한국을 도울 것이라는 기대는 크게 낮아졌다. “통일보다 현재가 낫다”…북한 불신·피로감 최고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은 28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6 통일의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원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7월 1일부터 26일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19~74세 성인 남녀 1200명을 방문 면접 방식으로 조사했다. 서울대는 이를 토대로 29일 '통일의식조사 20년: 멀어진 통일의 꿈, 익숙해진 분단 현실'을 주제로 학술 대회를 개최한다.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 정권과 대화·타협이 불가능하다는 응답은 지난해 66.5%에서 올해 78.3%로 뛰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90.4%, 북한 정권이 통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도 83.3%에 달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위협을 느낀다는 응답은 86.4%로 나타났다.
통일에 대한 기대도 낮아졌다.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9.0%로 2007년 63.8%에서 크게 줄어 2024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았다. 반대로 ‘현재대로가 좋다’는 응답은 31.5%로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20대와 30대에서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각각 44.8%, 47.0%였다.
부정적 인식의 배경으로는 통일 이후 사회적 문제와 경제적 부담이 꼽혔다. 통일이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29.8%가 ‘통일 이후 생겨날 사회적 문제’를, 29.1%가 ‘통일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선택했다. 북한을 협력 대상으로 보는 인식은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호남권은 지난해 38.7%에서 올해 56.0%로 크게 오른 반면, 충청권은 41.5%에서 34.6%로 낮아졌다.
연구원은 지난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개선 기대감으로 통일 필요성에 대한 긍정 인식이 반등했지만 경색 국면이 이어지면서 북한에 대한 피로감과 실망감이 다시 커진 것으로 분석했다.
김범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은 “지난 수십년 간 남북관계가 개선됐다가 다시 나빠지는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남북관계는 결국 잘 안 되는구나’라는 실망감이 쌓인 측면이 있다”며 “북한과 뭘 해도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경험이 불신과 피로감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과는 같은 경쟁 규칙을 강조하는 인식이 강해졌다. 북한이탈주민도 조직 안에서 똑같이 경쟁해야 한다는 응답은 79.8%로 전년보다 12.3%포인트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도 42.9%로 상승했다. 결혼상대자로 꺼린다는 응답은 59.2%로 2007년 이후 가장 높았고, 사업 동업자로 꺼린다 42.7%로 전년보다 6.4%p 상승했다. 미국 신뢰도 흔들…일본엔 협력 인식 커져미국은 한국 국민이 가장 친밀하게 느끼는 최우방 국가로 꼽혔지만 신뢰 수준은 낮아졌다. 미국을 가장 친밀한 국가로 꼽은 응답은 71.9%로 가장 높았지만 2023년 82.1% 이후 3년 연속 하락했다. 미국을 ‘협력대상’으로 본다는 응답도 76.4%로 2015년 이후 처음 80% 아래로 떨어졌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한국을 도울 것이라는 응답은 61.2%로 전년보다 9.3%포인트 떨어져 조사 이래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반면 미국이 ‘자국의 이익에 따를 것’이라는 응답은 34.4%로 처음 30%를 넘었다. 북한의 핵 공격 때 미국이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응답도 75.4%로 낮아졌다.
김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일방주의적 외교정책 등의 영향으로 이같은 인식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미국은 여전히 주변국 가운데 가장 신뢰하거나 협력 대상으로 보는 동맹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고, 과거와 비교해 상대적인 신뢰 수준이 낮아졌다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일본에 대한 인식은 개선됐다. 일본을 협력대상으로 본다는 응답은 35.9%로 전년보다 10.7%포인트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은 41.0%가 경계대상이라고 답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