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입사 24년 만에 사장직에 올랐다.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영업 일선에서 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대문자 ‘I(introvert·내향형)’라고 말한다. 조준호 전 ㈜LG 사장(사진)이다. 현직에서 물러나 2023년 출간한 책 제목도 <내향인 개인주의자 그리고 회사원>이다.
그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30년 전은 내향인에게 더욱 불리했다. 저녁 술자리는 고스톱까지 이어졌고 주말에도 상사의 호출에 사우나, 등산로에 집합했다. 28일 만난 조 전 사장은 자신의 생존 수칙과 직장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했다.
▷진짜 내향인이 맞는가.
“직장 생활 초반엔 술자리나 주말 운동 등에 나가며 적응하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쳐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사회생활에서는 큰 핸디캡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성과로 승부를 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LG전자에서 맡은 첫 직무가 해외영업이다.
“쉽지 않았다. 영업을 잘하는 분들은 바이어를 붙들고 접대해서 일감을 따오더라. 그런 걸 잘 못해서 처음엔 꽤 애를 먹었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당시 배치받은 곳이 오디오수출부였는데, 내 장점인 기획력을 살려 개발실 엔지니어들과 함께 하이엔드 오디오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마침 엔화 강세로 해외 업체들이 한국으로 눈을 돌리던 때여서 2년 만에 실적이 났다.”
▷관리자로서도 내향인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부하 직원과의 관계를 신경 써야 했다. 좀 딱딱하더라도 피드백만 확실하게 주면 후배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걸 불편하게 여기는 직원도 있더라. 그 이후부터는 좀 실없는 소리도 하고 능글맞게 얘기한다든지 해서 나름대로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내향인이 어려움을 겪는 것 중 하나가 ‘자기 피알(PR)’이다.
“따로 힘 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성과를 내려면 관련 부서 및 상사의 도움이 필요한데, 내가 필요한 걸 어필하는 과정에서 같이 움직이면 그쪽에도 득이 된다고 설득하는 과정이 쌓인다. 그러다 보면 ‘저 사람은 제 실적만 챙기는 게 아니라 대의를 갖고 일한다’는 평이 붙는다.”
▷인맥 위한 사내 동호회 참여는 어떻게 보나.
“좋지 않다고 본다. 회사는 친목 모임이 아니다. 취미는 각자 자기 시간에 알아서 하면 될 일이지 회사에서 챙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직급이 높은 사람이 사내 동호회에 자꾸 얼굴을 내밀면 불필요하게 줄을 세우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사내 정치 자체는 필요 없다는 말인가.
“평소 상대가 뭘 원하는지 눈치 보는 식의 사내 정치라면 피하는 게 맞다. 일이 아니라 관계로 성과를 내려는 사람, 무조건 서열부터 세우고 자기 편에 안 서면 미워하는 사람, 공사 구분이 흐린 사람은 특히 내향인일수록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다.
다만 자기 입지를 다진다는 의미의 사내 정치는 필요하다. 일을 추진하고 성과를 내려면 자원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찾아가 어필하고 설득하고, 일을 맡은 뒤에도 3~6개월마다 윗선에 진행 상황을 알리며 필요한 도움을 청해야 하기에 관계를 구축해 둘 필요는 있다.”
▷결국 ‘내향인이어도 일만 아주 잘하면 된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업무 실력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직선이 아니다. 일을 맡으면 몇 년 정도는 일 생각하다가 ‘지하철 지나갔네’ 할 정도로 몰입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 업무 실력이 어느 날 갑자기 점프한다.”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하게 되는가.
“먼저 일에 대한 주인의식을 지녀야 한다. 내가 회사의 주인은 될 수 없지만, 일의 주인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의사소통 능력도 일 잘하는 사람의 덕목이다. 보고할 때 결론부터 얘기하고 그에 대한 근거 등이 차례로 나와야 한다. 윗선일수록 마음이 바빠지기 때문이다. 일의 맥락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가 맡은 업무가 좀 더 상위의 업무 목표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둬야 한다. 맥락을 아는 사람은 작게 맡긴 일도 1년쯤 지나 보면 주변 환경까지 바꿔 성과를 키워 놓는다.”
김미리 기자/사진=문경덕 기자 miri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