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재산에서 최소 5억원을 빼주고 과세하는 배우자 상속공제 규정은 1997년 생겼다.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하면 집 한 채 값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가격은 2억원대였다. 지난달 이 아파트 시세는 30억원대가 됐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6억원을 넘어섰다. 30년간 물가와 자산 가치가 오르는 동안 상속세 공제액은 변하지 않은 까닭에 정부 배만 불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과세 대상자 9배로 폭증2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과세표준구간 10억원 이하 과세 대상자의 평균 결정세액은 5063만원으로 20년 전 5467만원과 비슷했다. 반면 이 기간 상속세 납부 대상은 1971명에서 1만7294명으로 아홉 배 가까이로 늘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납부액은 줄었어도 내는 사람은 폭증했다는 뜻이다. 정부는 지난해 이들에게서 총 8756억원을 거둬갔다. 20년 전 대비 여덟 배 증가했다.
고정된 공제 체계가 과세 대상자 폭증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세청의 ‘5년 이상 장기 미개정 공제·비과세 항목’ 38개 중 상속·증여 관련만 21개(55.3%)에 달한다. 상속세는 물려줄 재산에서 국가가 정한 항목별 공제액을 빼고, 이후 다시 구간을 나눠 10~50% 세율로 과세한다. 이 공제액이 30년 가까이 방치된 사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KB부동산 기준 2007년 대비 세 배 오르고 물가를 반영하는 최저임금은 세 배 상승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한국재정학회장)는 “공제액이 묶인 데다 과표구간까지 고정돼 상속세가 지닌 부유세적 특징이 사라졌다”며 “중산층을 향한 ‘스텔스 증세’만 남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텔스 증세란 세율을 조정하지 않아도 물가가 올라 자연스럽게 세금이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李 “18억원까진 면세해야”상속세 개편 논의는 정치권의 해묵은 주제다. 2024년 윤석열 정부에서는 당정이 자녀 공제액을 5억원으로 늘리고 과표구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개편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해 말 민주당 일각에서 ‘부자 감세’라는 지적이 나오며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주당 내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에서 집 한 채 정도인 18억원까지는 세금이 없게 해주자”고 말하자 수도권 민주당 의원 사이에서 상속세 개편에 공감하는 이가 늘었다.
정치권에서는 상속세 과세 대상자 상당수가 중산층이라는 점에서 과세 취지가 퇴색하고 편법은 늘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과표 10억원 이하 납부 세액은 전체의 9.8%에 불과했다. 1인당 5063만원이 과세되는데도 세입 자체는 미미한 것이다. 일부 부부는 재산 분할을 통해 상속세를 피하려 ‘황혼 이혼’(동거 20년 이상 이혼)을 택한다.
전문가들은 물가연동제와 유산취득세 등을 대안으로 꼽는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캐나다, 미국 등이 상속세 공제에서 인플레이션,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을 매년 반영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공제액을 장기간 고정한 국가는 국민 33%가 세금 사정권에 놓이자 상속세를 없앴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인 각자가 물려받는 몫만큼 세금을 내는 방식이다. 각자의 과표가 줄어 피상속인의 전체 재산이 과세 기준이 되는 현행 유산세 제도보다 부담이 작다.
임한솔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물가연동제와 유산취득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상당수가 도입한 제도로 납세자의 세 부담 능력에 맞게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응능부담 원칙에 부합한다”며 “실효세율 수준 등을 고려해 도입 방식과 속도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