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하반기는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의 대목으로 통했다. 애플의 신제품 출격에 힘입어 국내 전자 부품사가 실적을 끌어올려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대내외 경제 환경이 급변하며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원·달러 환율 급락과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부품 단가 압박 등이 겹치면서 전자 부품사가 기대한 ‘애플 효과’가 대폭 반감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 부품사들이 수익성 비상을 우려하는 가장 큰 요인은 환율 하락이다. 애플 등 빅테크와의 거래는 대부분 달러화로 이뤄지기 때문에 환율 변동은 실적에 직결되는 요소로 꼽힌다. 올 상반기 고점을 찍은 원·달러 환율은 하반기 들어 가파른 내림세를 탔다. 지난 7월 1일 달러당 1559.1원이던 환율은 이달 9일엔 1334.7원으로 떨어졌다. 이후 소폭 올라 26일 기준 1359.0원을 기록했다. 고점 대비 환율이 약 13% 급락하면서 해외 판매 비중이 절대적인 국내 부품사는 앉은 자리에서 막대한 환손실을 보게 됐다. 환헤지를 감안하더라도 지속적인 원화 강세 흐름은 고스란히 영업이익 축소로 이어진다.
설상가상으로 구조적 악재도 겹쳤다. 모바일용 메모리 가격이 오르는 칩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면서 부품사를 향한 스마트폰 업체의 단가 인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애플이 처음 선보인 폴더블폰 ‘아이폰 듀오’가 256GB 기준 329만원이라는 초고가로 책정된 점도 변수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얼어붙게 하면서 판매 흥행으로 이어질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어서다.
이 같은 여파는 국내 주요 전자 부품사의 3분기 실적 전망치 하향 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이폰 듀오 패널 전량과 아이폰18 시리즈 패널을, LG디스플레이는 아이폰18 시리즈 패널을 공급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2572억원으로, 기존 컨센서스(4291억원)를 40% 가까이 밑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이익 폭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 부품인 카메라 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카메라 모듈 및 3D 센싱 모듈 등 애플 의존도가 높은 LG이노텍은 올 3분기 영업이익이 1501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기존 컨센서스인 3112억원 대비 무려 52% 급감한 수치다. 삼성전기는 모바일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가격 인상 효과로 탄탄한 실적이 예상되지만, 환율 하락 영향을 피하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와 동일한 환경이었다면 7000억원의 영업이익이 기대됐으나 원화 강세 여파로 6500억원으로 조정됐다. 자화전자, 덕우전자, 비에이치(BH) 등 카메라 모듈용 부품과 기판 등을 납품하는 중소 협력사 역시 환율 하락 및 단가 인하 영향으로 수익성 방어에 비상등이 켜졌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하반기는 애플 효과를 업고 실적 상승기로 여겨졌지만 올해는 급격한 환율 하락 등 여러 악재가 동시에 겹쳐 체감 경기가 역대급으로 얼어붙었다”며 “부품사마다 추가적인 원가 절감과 수익성 위주의 포트폴리오 재편 등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