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멀지만 가까운 나라 호주

입력 2026-09-27 16:54
수정 2026-09-28 00:10
얼마 전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열린 제47차 한·호 경제협력위원회 세미나에 참석했다. 양국 경제인과 정부 인사 2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감사하게도 한국 측 대표로 건배사를 맡게 되었다. 행사의 주제는 ‘변화하는 세계 속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Trusted Partners in a Changing World)’. 세계 공급망이 흔들리는 지금, 양국 관계를 이보다 잘 표현한 말도 없다.

나와 호주의 인연은 30년이 넘었다. 1993년 수입육이 아주 생소하던 시절, 염소고기와 양고기를 사기 위해 처음 애들레이드를 찾았다. 당시 첫 거래를 시작한 토머스 푸즈(Thomas Foods)와는 지금까지 거래하고 있다. 20대 회사 직원으로 호주 고기를 사러 왔던 내가 30여 년이 지나 같은 도시에서 양국 경제인 앞에 한국을 대표해 건배사를 하게 되다니 가슴이 벅찼다. 이런 솔직한 감정이 전해진 걸까. 호주 측 참석자들은 뜨거운 박수로 호응해줬다.

한국과 호주의 인연은 나보다 훨씬 오래됐다. 이 협의체는 1979년 포스코 설립자인 고(故) 박태준 회장이 시작했다. ‘공급망’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성장하려면 안정적인 해외 원료 공급처가 필요하다는 걸 일찍이 내다본 것이다. 우리는 호주에서 철광석과 석탄, 에너지와 식량 같은 1차 산품을 들여오고, 여기에 제조·가공 기술을 더해 다시 세계로 내보냈다. 호주의 풍부한 자원과 한국의 기술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운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한국 측 대표를 맡은 장인화 포스코 회장이 2박3일 일정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끝까지 챙기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곧바로 밤 비행기에 올라 미국 루이지애나의 대규모 제철소 기공식으로 향한다고 했다. 47년 동안 이어져 온 한·호 경제협력은 이런 사람들의 책임과 헌신이 쌓여 이뤄졌을 것이다.

호주 측 건배사를 맡은 M Group 창업자도 기억에 남는다. 청년 기업가인 그는 나를 브리즈번 본사로 초대해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지, 한국과의 협력을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열정적으로 들려줬다. 그의 절박하고 솔직한 이야기에서 문득 30여 년 전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 호주를 누비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세월이 흘러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인공지능이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됐지만 사람을 만나고, 신뢰를 쌓고, 새로운 길을 함께 만드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47년간 이어진 양국의 협력도, 내가 30년 넘게 이어온 거래도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30여 년 전 처음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만 해도 이 나라가 내 삶과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줄은 몰랐다. 지도상으로는 여전히 먼 나라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면 이제 호주는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호주는 언제나, 멀지만 가까운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