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연의 돌봄과 실버사회] 늘어난 돌봄이 말해주지 않는 것

입력 2026-09-27 17:08
수정 2026-09-28 00:14
방문요양보호사가 다녀간 뒤에도 하루는 끝나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약을 챙기고, 밤중에 화장실에 가는 일이 남아 있다. 곁에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한결 수월하겠지만,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같은 시간의 공적 돌봄 서비스를 받아도, 그 밖의 시간에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하루는 전혀 달라진다.

공적 돌봄은 장기요양보험이나 노인맞춤돌봄서비스처럼 공공 제도를 통해 제공하는 돌봄이다. 사적 돌봄은 가족이나 지인이 대가 없이 해주는 도움이다. 공적 서비스가 일상의 일부를 맡고, 그 외 시간을 가족 등이 채우는 사례가 많다.

노인 돌봄 정책에서는 공적 돌봄 이용자가 늘어났다는 소식이 성과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용자가 늘었다고 실제 돌봄 여건까지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 한국고용정보원의 고령화연구패널이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일상생활 기능 제한이 있는 사람을 분석한 연구에서 공적 돌봄을 받는 비율은 2010년 7%에서 2018년 15%로 8%포인트 높아졌다. 그 늘어난 같은 기간 남성의 돌봄 공백은 28%에서 25%로 줄었지만, 여성은 25%에서 32%로 오히려 커졌다.

같은 기간 가족 도움만 받는 비율도 달랐다. 남성은 66%에서 65%로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여성은 67%에서 50%로 크게 감소했다. 남성은 가족 돌봄이 유지된 채 공적 돌봄이 더해졌지만, 여성은 줄어든 가족 돌봄을 공적 서비스가 모두 채우지 못해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노인이 받는 돌봄을 이해하려면 공적 서비스의 이용 여부만 봐서는 안 된다. 서비스 밖 시간을 채울 사람과 자원이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이런 여건은 남녀에게 똑같지 않다.

우선 가족 안에서 돌봄을 주고받는 역할부터 비대칭적이다. 가족 돌봄은 오랫동안 여성의 몫으로 여겨졌다. 아내가 아픈 남편을 돌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기대되는 반면, 남편이 아픈 아내를 돌보는 데는 같은 기대가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 여성이 돌봄을 더 많이 맡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필요할 때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더 오래 산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남편을 돌보다 먼저 떠나보낸 뒤 혼자 노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돌봄 수요가 더 커지는 초고령기엔 형제자매의 사망과 자녀의 고령화로 도와줄 사람도 줄어든다. 경제적 여력도 중요하다. 부족한 도움을 유료서비스로 채우려면 돈이 필요하다. 출산·양육·간병으로 일을 중단하거나 저임금 노동을 이어온 여성은 충분한 소득과 연금을 마련하기 어렵다. 생애 동안 누적된 불평등이 노년의 돌봄자원 격차로 이어진다.

이 조건만으로 돌봄의 성별 차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적 돌봄이 늘어나는 동안에도 여성의 돌봄 공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여성에게도 공적 서비스는 확대됐지만 이를 받쳐줄 가족 돌봄과 경제적 자원까지 함께 늘어난 것은 아닐 수 있다.

남녀 모두 공적 돌봄 이용이 증가했다는 수치만으로 돌봄의 불균형이 해소됐다고 볼 수 없다. 정책 성과도 이용자 수만 아니라 필요한 도움이 얼마나 채워졌고, 돌봄 공백이 얼마나 줄었는지 함께 봐야 한다. 돌봄을 받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과 돌봄 없이 지내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얼마나 늘었는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늘었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