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IF(만약)’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록에는 틈이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이 살아온 모든 순간을 역사로 붙잡아둘 수는 없으니까요. 기록이 잠깐 숨을 고르는, 사실과 사실 사이의 공백에는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시대를 노래하는 이야기꾼이라면 늘 이 틈을 예리하게 주시해야 하고요. 그래서 위대한 이야기는 대개 이 빈틈에서 자라납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입니다. 사실 순풍을 만날 경우 보름 남짓이면 닿을 거리였다고 하죠. 호메로스는 그 귀향길에 신과 괴물, 사랑과 유혹, 모험을 채워 넣어 불멸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남겼습니다. 수십 세기가 흘러 크리스토퍼 놀런이 이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 봤습니다. 수천 년 간 읽고 또 읽힌 이야기였지만, 놀런의 눈에는 여전히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였나 봅니다. 원전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기는 대신 인물과 사건을 덜어내고 또 보태며 ‘오디세이’를 만들었습니다.
‘오디세이’를 보면서 떠오른 감독과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46년 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선보인 ‘카게무샤’(1980)입니다. 러닝타임 172분의 ‘오디세이’보다 긴 180분짜리 대작입니다. 길다고 좋은 영화는 아닙니다만, 이런 영화들은 대체로 자기만의 영화관을 구축한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미쟝센을 보여주고 싶은 만큼 밀어붙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태양을 꿈꾼 그림자 무사
질서가 무너진 16세기 일본 전국시대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명멸한 시기입니다. 수많은 무장이 ‘천하인’ 자리를 다퉜고, ‘가이의 호랑이’로 불린 다케다 신겐은 그 중 하나였습니다.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과의 숙명의 대결, ‘풍림화산(風林火山)’ 깃발을 내세운 강력한 군대,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까지 격파한 그의 삶은 이야깃거리가 넘쳤습니다.
신겐의 천하는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1573년 돌연 세상을 떠납니다. 누구는 병으로 쓰러졌다 하고, 누구는 이에야스군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았다고 하죠. 어쨌든 신겐은 자신의 죽음을 3년간 숨기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여기까지가 역사인데, 구로사와는 여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3년 간 죽은 신겐의 자리는 누가 지켰을까’라는 질문으로요.
‘카게무샤(影武者)’는 우리 말로 ‘그림자 무사’입니다. 이 시절 일본에선 적군의 눈을 속이고, 암살 등의 위협에서 영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와 닮은 대역을 세웠습니다. 신겐 역시 자신과 닮았다는 동생 다케다 노부카도를 카게무샤로 즐겨 활용했다고 합니다. 주군이 태양이라면, 똑같은 차림새로 같은 자리에 서는 카게무샤는 말 그대로 그의 그림자인 셈입니다.
구로사와는 이 카게무샤의 존재 의의를 뒤집었습니다. 살아 있는 신겐을 위해 잠깐 그의 행세를 하는 대역이 아니라, 죽은 신겐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3년 간 신겐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을 상상했습니다. 물론 신겐이 자신의 서명을 쓴 종이를 3년치 준비하는 등 죽음을 숨기기 위한 여러 장치를 해놨다고 하니, 그리 놀라울 만한 상상력은 아닙니다.
구로사와는 이 카게무샤의 자리에 영주를 빼닮은 동생, 충직한 가신이 아닌 좀도둑을 앉힙니다. 도둑질하다 붙잡혀 죽을 날만 기다리다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목숨을 건진 가짜 신겐은 하루아침에 천하를 호령하던 다이묘의 옷을 입습니다. 신겐처럼 앉고, 말하고, 사람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죠.
가짜는 점점 진짜를 닮아가기 시작합니다. 신겐이 사랑했던 손자를 자기 핏줄처럼 아끼고, ‘바람처럼 빠르고, 숲처럼 고요하며, 불처럼 맹렬하고, 산처럼 묵직하게’란 뜻을 담은 신겐의 트레이드마크인 ‘풍림화산’처럼 군대를 지휘하려 합니다. 훗날 다케다 군이 나가시노 전투에서 노부나가·이에야스 연합군에 참패하자 가짜는 정작 그토록 원하는 자유의 몸이 돼놓고선, 분을 이기지 못하고 불나방처럼 홀로 적군을 향해 돌진해 산화하죠.
이렇게 ‘카게무샤’에는 신겐을 중심으로 세 개의 이야기가 엮입니다. 천하인을 꿈꿨던 신겐, 그림자로 사로잡힌 카게무샤, 주군을 잃은 뒤에도 그 유산을 붙들고 싸우다 결국 몰락하는 다케다 가문의 이야기죠. 여기까지만 보면 ‘가짜가 진짜가 되어가는 동화’ 내지는 ‘삶의 덧없음을 부르는 노래’ 같습니다만, 구로사와의 영화적 궁금증은 조금 다른 데 있었던 듯합니다. 요약하면 ‘신겐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제 살길만을 찾던 좀도둑조차 그에게 감화됐을까’인데요. 진짜 신겐은 영화에서 꽤 이른 시점에 사라지는데, 죽고 나서 그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거든요.
실제로 구로사와는 영화 개봉 이듬해 영국의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i>“카게무샤를 좀도둑으로 설정하니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이 남자가 어떻게 신겐이라는 사람에 빠져들어 신겐 그 자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게 신겐의 강력한 인품 때문이어야 한다고 봤어요. 그러고 나니 나가시노 전투에서 죽은 신겐의 장수들도 그에게 매혹됐던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상 나가시노에서 신겐을 위해 스스로 순교한 것이죠. 말하자면 그들은 신겐을 사랑했던 겁니다. 그렇게 세 개의 이야기, 혹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세 갈래가 저절로 생겨났습니다.”</i>
한 인간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름, 핏줄 같은 태생적 조건일까요, 평생 맺어온 관계와 짊어진 책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생겨난 믿음같은 것일까요. 카게무샤로 살던 가짜는 신겐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전장으로 뛰어들 때까지 여전히 가짜였을까요. 아니면 이 역시 좀도둑의 의지가 아니라 죽은 신겐의 삶의 태도가 그를 움직인 것일까요.
구로사와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는 않지만, 그는 어쨌든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놓습니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인간은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신 누군가를 사랑하고 동경하고 미워하면서 그의 말과 행동양식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정체성을 갖게 되는거죠. 물론 그것이 언제나 아름다운 변화라는 뜻은 아닙니다. 잘못된 사랑은 개인의 차원에선 가짜 신겐처럼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고, 집단으로 가면 다케다 가문처럼 그릇된 전쟁으로 무너지게 될 수도 있죠. 감화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위험한 능력인 셈입니다.
비싸고 긴, 회화적 영화
감화라는 키워드는 영화 밖에서도 중요합니다. 하마터면 이 영화는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습니다. 구로사와의 이름값은 세계적으로 높았지만, 그가 요구하는 막대한 제작비를 선뜻 내놓을 곳은 없었습니다. 1950~1960년대 황금기를 거친 일본 영화시장은 TV에 밀려 관객은 줄고 거대한 제작 시스템도 힘을 잃은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구원군은 바다 건너 할리우드에서 나타났습니다. ‘대부’ 시리즈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스타워즈’ 시리즈의 조지 루카스였습니다. 둘 다 구로사와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감독으로, 20세기폭스사의 지원을 이끌어냈습니다. 결국 일본 굴지의 영화사 도호도 움직이면서 구로사와가 그린 세계를 스크린에 옮길 수 있게 됐습니다.
수백 명의 병사와 기마대, 끝없이 늘어선 깃발과 갑옷, 광활한 들판을 가득 채운 전투 장면은 말 그대로 장엄합니다. 카게무샤가 죽은 신겐을 만나는 대단히 신비로운 꿈은 말 그대로 환상적입니다. 어느 장면에서 멈춰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일 만큼 치밀하게 계산된 구도와 색채가 영화를 지배하는데, 전장의 풍경은 일본 우키요에 회화나 병풍화를 보는 듯합니다.
실제로 구로사와의 완벽주의는 악명 높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세트가 마음에들지 않으면 이미 지어놓은 것도 다시 뜯어고쳤고, 제작비와 촬영 일정을 초과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요. 영화의 나가시노 전투를 재현하기 위해 수 천명의 엑스트라를 카메라 앞에 세워 두 달여간 촬영 했다고 합니다.
이런 예술적 집착은 ‘오디세이’의 항해 장면을 실제 바다 위에서 고대 선박 건조 방식으로 제작한 배를 띄워 배우들이 직접 노를 젓게 하거나, 트로이 성을 직접 구현하는 등 2억5000만 달러를 쏟아 부은 놀런과 닮았습니다.
‘카게무샤’만으로는 구로사와의 후기 영화 세계를 온전히 봤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5년 뒤 개봉하는 ‘란’(1985)이 정점이라 할 수 있어섭니다. 구로사와가 ‘카게무샤’를 구상할 당시부터 품고 있던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일본 전국시대로 옮긴 작품입니다.
‘카게무샤’는 국내에선 1998년 극장에서 관객과 만났습니다. 일본 문화 개방에 따라 국내 정식 개봉한 두 번째 영화입니다. 씨네필들은 DVD 등을 통해 감상하고는 있는데, 아쉽게도 현재 OTT 등에서는 만날 길이 없습니다. 대신 ‘황야의 7인’, ‘매그니피센트 7’ 등 할리우드가 리메이크한 ‘7인의 사무라이’(1954),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서부극에 큰 영향을 준 ‘요짐보’(1961),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는 등 일본 영화사의 걸작이라 불리는 ‘라쇼몽’(1950) 등은 OTT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카게무샤’를 당장 만날 길이 없다는 건 아쉽지만, 이 영화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를 향했는지를 살펴보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테니 로사와의 세계를 먼저 만나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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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불 켜진 극장을 나설 때 비로소 쏟아지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영화의 만듦새부터 명연기의 순간, 영감을 주는 음악, 원작의 오묘한 변주까지. <잔상>에선 한 편의 영화에서 뻗어나가는 무수한 가지를 타고 온갖 이야기를 나눕니다.</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