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제청·임명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대법원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김민기 서울고법 고법판사(55·사법연수원 26기)가 법조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청와대는 김 판사를 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 1순위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제청했다.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하자 조 대법원장은 지난 22일 이를 거부했다.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이견이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놓고 벌이는 헌법기관 간 충돌로 번진 것이다.
갈등의 한복판에 선 김 판사는 법원 안에선 오랫동안 노동법을 파고든 법관으로 손꼽힌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진보 성향 법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30년에 가까운 법관 경력을 보면 정치적 사건보다는 노동법 연구와 실무 경험이 두드러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법 석박사…중노위 공익위원도경기 안양 출신인 김 판사는 서문여고와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제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7년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한 뒤 서울행정법원과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쳤다. 부산고법과 수원고법에서 고법판사로 근무한 뒤 현재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맡고 있다.
전문 분야는 노동법이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노동법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7~2011년과 2014년 이후 중앙노동위원회 심판 담당 공익위원으로 활동하며 노동 현장의 분쟁을 오랫동안 다뤘다. 작년 3월부터는 법원 내 노동법분야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24년 학술지 ‘노동법연구’에 발표한 ‘사내하청과 단체교섭, 다시 해석의 자리에서’ 논문을 보면 김 판사는 원청이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한다면 단체교섭 상대방인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법 해석에 무게를 실었다. 실질적 지배력 설을 채택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서울고법 CJ대한통운 판결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실제 영향력을 기준으로 사용자 책임을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청근로자의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쪽에 적극적인 해석이다.
실제 재판에서도 노동·사회 문제를 꾸준히 다뤘다. 지방자치단체 환경미화원에게 지급된 기말수당과 정근수당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5·16 군사정변 직후 간첩 혐의 등으로 처벌된 진승록 전 서울대 법대 학장의 재심에선 무죄를 선고했다. 김경수 댓글 조작 유죄…우병우는 상당수 혐의 무죄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 판사가 주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2020년 댓글 조작에 따른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선 1심의 징역 2년을 유지하는 한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뒤집었다. 대법원도 이 판단을 확정했다.
이듬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항소심에선 두 1심 사건에서 합계 징역 4년이 선고됐던 우 전 수석의 상당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징역 1년을 선고한 재판부에 참여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다시 거론되는 판결은 지난해 김만배 씨와 최윤길 전 성남시의장 사건이다. 수원고법 재판부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 통과 대가로 금품을 주고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1심 유죄를 깨고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사법개혁 당시 "또 다른 법원행정처 안돼" 비판도김 판사는 재판 밖에서도 사법제도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2018년 사법행정제도 개편 논의에 참여하면서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새로 만드는 ‘사법행정회의’로 넘기는 방안에 제동을 걸었다.
당시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 토론회에서 김 판사는 대법원장이 갖고 있던 사법행정 의사결정·집행권을 사법행정회의에 그대로 이관하면 이 기구가 ‘또 다른 법원행정처’가 돼 권한을 남용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대통령 임명과 국회 동의 등 절차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만 사법행정회의가 최고 수준의 권한을 행사할 경우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사법개혁 논의에 참여했지만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새로운 기구에 그대로 옮기는 방식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 셈이다.
당시 사법행정회의 도입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대법원은 2019년 권한이 제한된 사법행정자문회의를 대신 출범시켰다. 이 기구도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후 사법정책자문위원회로 대체됐다. 공교롭게도 현재 여권에서는 대법관 제청 갈등을 계기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 배우자는 현직 헌법재판관김 판사에게 가장 많이 따라붙는 수식어는 ‘진보 성향 법관’이다. 진보적 법관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했고 노동기본권을 폭넓게 보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는 점 등이 근거로 거론된다. 청와대가 김 판사를 첫 대법관 후보로 선호한 배경에도 여성 법관이면서 이 같은 성향과 전문성을 갖췄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내부에서 김 판사 제청에 부담을 느낀 배경으로는 배우자인 오영준 헌법재판관 문제가 거론된다. 오 재판관 역시 과거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했고 현 정부 들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으로 취임했다. 특히 지난 3월 재판소원제가 시행돼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헌법재판소 심판 대상이 될 수 있게 되면서 부부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는 데 대한 공정성·이해충돌 우려가 사법부 내부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판사의 30년 가까운 법관 경력을 보면 정치적 사건보다 노동법 연구와 사법제도에 대한 꾸준한 문제의식이 두드러진다. 2018년 사법행정권을 새로운 기구에 넘길 경우 또 다른 권한 남용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계했던 그는 8년 뒤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충돌하는 대법관 인선 사태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김 판사 본인은 아직 이 같은 인선 갈등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