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유화학도 '반도체 쏠림' 피해…종전 후에도 공급 부족" [인터뷰+]

입력 2026-09-28 06:30

“당장 미국·이란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 쪽으로 인력이 몰려 석유 생산 설비 복구가 지연될 가능성이 우려됩니다. 정유·석유화학 관련 종목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아야 할 이유입니다.”

이충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한경닷컴과 만나 “전쟁이 끝나도 석유 공급이 정상화되기까지 2~3년은 걸릴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영향을 받는 중동산 석유 공급량은 하루 2000만 배럴 수준이다. 이 연구원은 “중동산 석유 공급량인 하루 2000만 배럴 중 20%를 생산하는 설비가 망가졌다고 가정해도 400만 배럴”이라며 “전 세계가 하루에 쓰는 석유의 4% 이상이 공급되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복구에도 시간이 걸리고, 복구가 필요한 유전이 얼마나 되는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이 연구원은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4월 당시 종전을 가정해 80%는 6주 안에 복구될 것으로 봤지만, 나머지 20%는 복구 시점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4월 이후 전쟁이 이어진 만큼 추가 손상과 복구 여건 악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이란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중동 지역의 석유 생산설비가 빠르게 정상화되긴 힘들다고 이 연구원은 지적했다. 우선 생산이 멈춘 사이 유전 내부 환경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어, 이를 파악해야 한다. 이 연구원은 “지상에 있는 기계는 뜯어내고 다시 설치한다고 해도 유전 내부는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며 “아예 복구가 안 되는 곳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상 설비를 복구하는 작업도 시간이 필요하다.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데 몇 달이 걸릴 수 있고, 이후 시설을 철거한 뒤 새 장비를 발주해 설치해야 한다. 이 연구원은 “주문한다고 쿠팡처럼 다음날 장비가 오는 게 아니다”며 발주한 장비를 생산하는 데도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고 지적했다.

AI 투자 열풍이 유전 복구를 위한 인력 확보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이 연구원은 우려했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전기 엔지니어는 정유설비 복구에도 투입돼야 하는 인력이다. 미국에서 데이터센터 건설로 관련 인건비가 높아졌고, 국내에서도 반도체 설비 건설로 인력 수요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기술자들로선 이미 높은 몸값을 인정받고 있는데 위험한 중동 지역에까지 일하러 갈 유인이 적다고 이 연구원은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로 정유주들은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한 뒤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에쓰오일(S-Oil)의 지난 23일 종가는 15만5600원으로, 지난 2월 종가(11만원) 대비 41.45% 상승했다. 중동 지역 및 러시아의 유전뿐 아니라 석유정제설비까지 전쟁으로 파괴되면서 정유업체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반면 석유정제 부산물인 나프타를 원재료로 플라스틱을 만드는 석유화학 기업들의 주가는 부진했다. 전쟁 발발 직후엔 국제 유가가 치솟아 원재료비 부담이 부각되며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이후 수익성 개선 가능성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다시 꺾였다. 가장 순수한 나프타분해설비(NCC) 업체인 대한유화의 지난 23일 종가는 9만800원으로, 2월 종가(18만990원) 대비 52.19% 하락한 상태다.

화학주 부진의 배경으로 이 연구원은 우선 재고 소진 기간이 석유제품보다 길다는 점을 꼽았다. 이 연구원은 “마트에 있는 페트병도, 유니클로 매장의 옷도 재고”라며 “그런 물량이 어느 정도 소비돼야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은 전쟁 초반부터 정제마진이 상승했지만, 석유화학은 재고가 공급 부족을 완충하면서 업황 개선이 늦어졌다는 설명이다.

주식시장에선 수급에서 소외되는 현상도 나타났다고 이 연구원은 지적했다. 그는 “IT와 AI 쪽으로 돈이 많이 가면서 이들 업종에는 자금이 덜 들어오니 상대적으로 덜 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자재 시장보다 AI에 관심과 자금이 집중되고, 정유·석유화학을 중장기 성장성이 낮은 산업으로 보는 시각도 시장의 관심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았다.

수익성 개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지금까지의 주가 부진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이 연구원은 판단했다. 정유·석유화학 섹터 내 최선호주로는 롯데케미칼을 제시했다. 그는 “롯데케미칼의 현재 주가는 제가 제시한 목표주가의 절반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한유화도 현재 주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상승 여력은 롯데케미칼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원은 “NCC 업체들은 3분기부터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본다”며 “장기 전망은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최소한 내년 1분기 정도까지는 석유화학의 실적 개선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임계점을 넘는 국제 유가 상승으로 수요가 꺾일 경우의 위험도 화학주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유화학 제품이 석유제품보다 수요 감소의 타격을 더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어서다. 출퇴근과 전력 생산, 난방에 필요한 연료 소비는 당장 줄이기 어렵지만, 외식이나 배달 음식 소비를 한 번만 줄여도 플라스틱 사용량은 감소한다는 설명이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