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에 묶인 유조선…유가 내려도 휘발유값은 요지부동

입력 2026-09-22 16:52
수정 2026-09-22 16:57

이라크·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공급난이 원유에서 유조선으로 번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우회 송유관이 드론 공격으로 멈추면서 원유 수송이 호르무즈해협으로 몰린 결과다. 유조선 운임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국제 유가가 하락해도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달 초 페르시아만에서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하루 대여료는 100만달러를 넘어섰다. 해양정보업체 윈드워드는 이를 원유 배럴당 약 26달러로 추산했다. 현재 원유 가격의 약 4분의 1에 달하는 수준이다.

운임 급등의 직접적인 계기는 사우디의 ‘동서 송유관’ 가동 중단이다. 페르시아만에서 홍해 얀부항까지 이어지는 이 송유관은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하는 핵심 수송로다. 하지만 이달 초 드론 공격으로 가동이 중단된 뒤 얀부항의 원유 선적도 멈췄다. 아람코는 일부 유럽·아시아 고객에게 9~10월 인도 물량이 지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사우디는 대신 동부 항구와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수출을 늘리고 있다. 원유를 호르무즈해협 밖까지 옮긴 뒤 다른 유조선에 다시 싣는 ‘선박 간 화물 이송(STS)’도 동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장거리 수송에 투입할 유조선이 줄면서 전 세계 약 900척인 VLCC 가운데 약 15%가 오만 해안에 머물고 있다. 세계 VLCC의 하루 평균 수익도 동서 송유관 가동 중단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뛰어 65만1107달러에 달했다.

후티 반군의 공격을 피해 희망봉을 우회하는 선박이 늘어난 것도 공급난을 키우고 있다. 희망봉을 돌아갈 경우 항해 기간은 약 2주 길어지고 선박 한 척당 비용도 약 100만달러 늘어난다.

유조선 부족이 장기화하면 국제 유가가 내려가도 소비자가 체감하는 기름값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정유사가 부담하는 실제 원유 가격에는 운송비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아디 임시로비치 옥스퍼드대 강사는 “정유사에 중요한 것은 운임을 포함한 원유의 최종 인도 가격”이라며 “결국 소비자가 이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