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27일 10:2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벤처시장은 ‘진입로’만 있고 ‘진출로’가 없는 고속도로 같은 상황입니다."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VC)협회장(사진)은 최근 서울 삼성동 퀀텀벤처스코리아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2020년을 전후로 국내 벤처펀드 조성 규모가 연 10조원 이상으로 커졌다"며 "하지만 코스닥시장 부진이 장기화하며 펀드의 투자금 회수, 재투자 등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벤처시장에는 국민성장펀드를 비롯한 대규모 자금이 밀려들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규 벤처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54.3% 증가한 8조8876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코스닥시장 침체로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회수 길이 막혔다는 점이다. 김 회장은 30조원 규모의 ‘코스닥 활성화 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그는 “펀드 자금으로 주식(구주)을 사들여 주가를 끌어올리자는 얘기가 아니다”며 “코스닥 기업의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등 메자닌에 투자하는 펀드를 조성해 혁신 기업에 신규 자금을 불어넣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스닥이 벤처 기업에 매력적인 시장이 돼야 우량 기업이 몰리고, 장기투자 중심의 기관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혁신 기업이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면 ‘성장 사다리’가 끊어진다는 게 김 회장 진단이다. 그는 미국 나스닥과 코스닥의 차이를 ‘상장 전후 자금조달 능력’에서 찾았다. 최근 5년간(2021~2025년) 나스닥 상장사는 IPO 단계에서 378조원을 조달했고, 상장 이후 유상증자 등을 통해 701조원을 유치했다. IPO보다 상장 이후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 규모가 더 큰 것이다. 한국은 정반대다. 코스닥 상장사의 IPO를 통한 자금 조달 규모는 12조1000억원인 반면, 상장 후 유상증자 등으로 조달한 금액은 8조7000억원에 그쳤다. 김 대표는 "전 세계적인 기술 패권 경쟁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코스닥 시장이 살아나지 못하면 혁신 생태계도 지속가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5년간 20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국민성장펀드와 코스닥 활성화 펀드 간 연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성장펀드의 일정 자금을 코스닥 펀드 조성에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국민성장펀드가 1500억원 규모 코스닥 리그를 만들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김 회장 평가다.
김 회장은 2000년 LG벤처투자(현 LB인베스트먼트)에 입사하며 VC 업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IDG벤처스코리아, 한화인베스트먼트 등을 거쳐 2017년 퀀텀벤처스코리아를 설립했다. 지난해 2월에는 16대 VC협회장으로 취임했다.
김 회장은 남은 임기 동안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 벤처펀드 조성'에 힘쓸 계획이다. VC협회는 대만, 일본, 베트남 등 각국 협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크로스보더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 VC가 공동 펀드 운용을 맡아 양국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식이다. 민간 주도로 크로스보더 벤처 플랫폼을 만드는 최초 사례다. 김 회장은 "국내 벤처기업과 VC가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며 "출자자(LP) 풀을 넓히고 회수 방법도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